[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물가관리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외식업계 등을 중심으로 제품의 가격은 유지하거나 소폭 올리면서 용량이나 수량을 줄이는 행위인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강도 높은 규제를 통해 소비자들이 생활에서 느끼는 '체감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 ▲ 정부가 소비자들의 체감물가 안정을 위해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소비자가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9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11월 말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기업들의 '꼼수 가격 인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슈링크플레이션 근절 대책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월 교촌치킨 등 일부 치킨 프렌차이즈 업계가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음식 중량을 줄이거나 저렴한 원재료를 활용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관계부처에 슈링크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 대책과 관련해 계량법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외식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10월28일 정량표시제품 관리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고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정량표시상품은 곡류와 채소, 우유, 과자류, 도료, 윤활유, 조리식품 등 질량과 부피가 표시된 상품 가운데 용기나 포장을 제거하지 않으면 양을 증감할 수 없는 상품을 뜻한다.
정부는 검사 기준을 현재 정량표시상품 적용범위를 '모든 제품'으로 확대하고 '평균량' 방식을 추가로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평균량 방식은 제품 표본의 평균 실제량이 표시량보다 적을 경우 위반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개별 제품 실제 중량이 표시량보다 적어도 법률상 허용오차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허용됐지만 평균량 방식이 도입되면 개별 제품 실제 중량이 허용오차 안이라도 평균적으로 표시량보다 실제량이 적으면 제재 대상이 된다.
이와 함께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을 슈링크플레이션 근절의 최우선 과제로 보고 현행 법규상 중량 표시 의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외식 메뉴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용량 또는 품질 변경 시 소비자 고지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행 식품표시광고법은 치킨을 즉석조리식품으로 분류해 중량 또는 용량표시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데 치킨에 '마리' 대신 '그램(g)'으로 표시하거나 조리 후 치킨 무게를 표시하는 '중량표시 강화'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 공지는) 소비자 알 권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업이 당연히 소비자에게 사전에 알리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강도 높은 슈링크플레이션 규제에 나선 배경은 가장 직접적으로 물가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가데이터처가 4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1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농축수산물 물가가 3.1% 급등하며 물가상승을 이끌었다.
특히 정부의 소비쿠폰 지급과 확장재정 등 구조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요인이 있지만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기는 어려운 만큼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감 물가’를 직접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슈링크플레이션은 통계상 물가 상승률과 소비자들이 실제 장바구니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 간의 괴리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먹거리 등 생활 필수품에서 슈링크플에이션 현상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은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고 전반적인 물가 불안 심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오전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민생경제의 핵심인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