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기업가치 평가는 25년 전 닷컴 버블 수준을 향하고 있다."(크라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엔비디아와 AMD 등 AI 칩 공급업체들과 잇따라 '수상한 거래'를 맺어 주목되고 있다. <연합뉴스>
챗GPT로 생성형 AI 시대를 연 오픈AI가 엔비디아와 AMD와 각각 잇따라 새로운 형태의 '거래'를 통해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관련한 당사자 및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AI 산업을 지배하며 기술 발전과 성장 과실을 독식할 발판을 만들고 있다는 전망과, 버블(거품) 발생 우려가 맞서는 게 주목된다.
윈텔이란 1980년대 후반 이후 대중화하기 시작한 'IBM 호환 PC'(이하 PC) 시대를 주도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의 PC 운영체제 '윈도'와 이 PC 칩(CPU) 공급업체 인텔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만들어진 말이다.
서로 상대에게 새 기술 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수요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함께 산업을 주도하고 시장을 지배하며 과실을 독식해와, '윈텔 동맹'으로 불리기도 했다.
AI 버블이란 닷컴 버블 경험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버블은 거품을 뜻한다.
메인프레임으로 대형 컴퓨터 시장을 주도하던 IBM은 1980년대 들어 애플이 간편하고 값싼 맥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자 PC를 개발해 반격에 나섰다.
중앙처리장치(CPU)로는 인텔 칩을, 운영체제로는 빌 게이츠(MS 창업자)가 차고에서 개발한 '도스(DOS)'를 채택했다. 게이츠는 이를 기회로 삼아 MS를 창업했다.
인텔 칩은 8088로 출발해 80286, 80386, 80586, 펜티엄 등으로 발전했다. 카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하게 하던 엠에스 도스는 그래픽(GUI)을 써 사용 편리성을 높인(마우스로 메뉴를 눌러 사용하는) 윈도로 발전했다.
80386 칩을 장착한 '386 PC'부터 윈도가 깔렸다. 이후 윈텔 동맹이 본격 가동됐다.
GUI는 애플 맥 컴퓨터에 먼저 적용돼, MS 윈도 등장 초기 '맥 따라하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용자들이 기능과 성능이 좋아진 새 윈도를 써보려면 한 단계 높은 성능을 가진 칩이 장착된 새 PC가 필요했다. MS가 새 윈도를 내놓을 때마다 인텔 새 칩을 장착한 새 PC 수요가 일었다.
또한 인텔 새 칩은 새 MS 윈도 수요를 일으켰다.
이런 구도를 기반으로 MS는 PC 운영체제 생태계를, 인텔은 PC 칩 시장을 장악했다.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며 과실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MS는 한편으로는 주기적으로 보안 지원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사용자들에게 새 윈도 사용을 사실상 강요했다. 새 윈도을 내놓을 때마다 구 윈도를 최대 경쟁자로 꼽는 마케팅 활동(윈도 업그레이드)을 벌였다.
인텔은 새 칩과 MS 새 윈도에 최적화된 PC 기술 사양을 설계해 삼성전자·LG전자·삼보컴퓨터 같은 PC 제조업체들과 각종 어플레케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에게 표준처럼 따르게 했다.
PC마다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부착하고, 부팅 때마다 특유의 인텔 소리가 나도록 했다. 부팅 첫 바탕 화면에는 MS 윈도 운영체제 로고가 나타나게 했다.
당연히 MS가 새 윈도를 내놓을 때마다 인텔과 PC 제조업체들과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의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며 주가가 뛰었다. 인텔이 새 칩을 발표할 때도 MS는 물론 PC 제조업체들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의 주가까지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MS 도스 및 윈도와 경쟁하던 운영체제들은 거의 사라졌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 주도로 개발된 PC 운영체제 'K-도스' 역시 MS 도스에 밀려 고사됐다.
인텔 역시 후발업체 AMD를 멀리 따돌렸다.
애플 맥 컴퓨터 시장점유율도 쪼그라들었다.
▲ AI 칩 업계 선두주자 엔비디아 로고. <엔비디아>
오픈AI가 엔비디아와 AMD와 앞다퉈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는 것을 두고, 챗GPT와 엔비디아·AMD AI 칩을 윈도와 인텔 칩 같은 관계로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오픈AI에 1천억 달러(139조 원)를 투자하고, 오픈AI는 엔비디아의 최신 고성능 AI 칩 기반으로 10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선다.
업계에선 10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면 AI 칩 값 만도 3500억 달러 가까이 드는 것으로 추산한다. 오픈AI가 엔비디아로부터 1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으면, 결과적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용 칩 구매 비용을 2500억 달러로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AI 칩 값을 30% 가량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냥 AI 칩을 30% 싸게 공급하면 될 것을, 왜 투자 방식을 끼워넣어 복잡하게 만들고, '수상한 거래' 의혹까지 부르는 것일까.
오픈AI와 엔비디아가 강력한 동맹을 맺어 AI 산업과 시장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분석이 많다.
오픈AI는 앞선 AI 모델 개발과 인프라 구축으로 구글과 메타 같은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서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엔비디아는 고성능 그래픽장치 공급업계 선두주자이다.
엔비디아는 오픈AI의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에 자사 칩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오픈AI 새 AI 모델에 최적화된 칩을 선제적으로 개발하고 공급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동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갈수록 커진다.
오픈AI는 엔비디아를 '우선적인 전략적 파트너'로 꼽고 있다. 새 AI 모델과 인프라 소프트웨어를 설계할 때 엔비디아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로드맵과 합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
오픈AI는 '딴 주머니'도 찼다. 엔비디아와 함께 AMD와도 손을 잡았다.
오픈AI는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AMD 새 AI 칩을 대량 구매하고, AMD는 주가가 600 달러를 넘으면 1억6천만 주(지분율 10% 안팎) 규모의 신주를 주당 0.01 달러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오픈AI에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 8일 종가 기준 AMD 주가는 235.56 달러다.
오픈AI의 새 칩 대량 구매로 AMD 주가가 2.5배 이상 오를 것으로 보는 것이다. 600 달러 넘는 주식을 0.01 달러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새 칩을 대량 예약 구매해준 오픈AI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혈맹'(오픈AI가 AMD 지분 10% 보유) 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픈AI 측에선 지금의 앞선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추가 비용 부담 없이 AI 칩 공급망을 하나 더 만들어놓는 꼴이다.
오픈AI는 AI 칩 1위와 2위 업체와 각각 콘크리트(투자와 지분 소유) 동맹을 맺어 AI 모델 고도화와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칩 및 기술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쟁사들과 초격차 간격을 유지하고, 엔비디아는 AI 선구자 오픈AI와 동맹을 맺어 시총 선두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뚜렷하다.
AMD는 오픈AI와 동맹을 통해 PC 중앙처리장치 시장에서 인텔에 밀려났던 굴욕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반면 시장에선 이른바 '챗디아(오픈AI-엔비디아) 동맹' 내지 '챗D(오픈AI-AMD) 동맹'이 지속가능하려면 지금과 같은 선순환 속도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오픈AI가 AI 시장에서, PC 운영체제와 응용소프트웨어 시장에서 MS가 지켰던 것 이상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
AI 시장에서 오픈AI를 능가하는 경쟁자가 등장해 기술 방향을 바꾸거나, AI 이상의 투자 매력을 가진 새 기술이나 산업이 등장해 미국 월가(투자자) 자본이 말을 갈아타기로(전략 투자 대상을 바꾸기로) 결정하는 순간, 이들 셋이 동맹을 맺어 추구하려는 가치의 상당부분이 거품으로 변해 꺼질 수밖에 없다.
산업 지배력과 기술 주도력에 구멍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버블을 우려하는 쪽은 이들 셋 사이의 거래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당시 미국 루스트테크놀로지 등 통신장비 업체들이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에게 거액을 대출해주고 자사 장비를 사게 했던 벤더 파이낸싱과 닮은 점에도 주목한다.
닷컴 버블을 본 딴 AI 버블 우려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는다.
사람들이 AI 버블을 기정사실화하며 붕괴가 시작되는 순간 이재명 정부의 '모두의 AI' 정책 효과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닷컴 버블 학습 경험에 따르면, AI 버블이 현실화해 붕괴 과정을 밟는다면 첫 신호는 '먹튀' 행동의 가시화일 가능성이 크다.
몇 해 전 카카오 계열사 임원들이 앞다투듯 스톡옵션을 행사해 '먹튀' 논란이 일었을 때도 "닷컴 버블 학습 효과"란 분석이 나온 바 있다.
IMF 총재는 "(주가 급락 시) 세계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취약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짚었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