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19일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바람직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130여 명의 금융감독위원회 사무처 조직에 모든 문제의 소지가 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17년 만에 추진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해 '관치금융'이 심화할 수 있는 구조라고 일갈했다.
19일 서울 종로에서 만난 윤 전 원장은 새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우려되는 부분을 묻자 “여기 칠판은 없냐”고 물으며 펜을 꺼내들고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구조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윤 전 원장은 감독정책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감독집행을 담당하는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각각 배치한 표를 그려놓고 이번 개편안은 ‘관치(官治)’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 개편안은 금융 산업정책과 감독의 분리,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라는 ‘좋은’ 명분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이번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오히려 금융감독의 독립성·전문성을 훼손하고 감독 업무 비효율성을 키울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나오고 있는 데 학자시절부터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을 강조한 윤 전 원장도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 신설 등 금융당국 조직개편을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통과됐다.
여당은 상임위원회 통과에 이어 예고했던 대로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상태다.
▲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19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바람직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 ‘관치’ 심화만 보이는 개편안,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 설치 이유 설명 못해
“(현재 개편안은) 관치를 살리기 위해 개편을 한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윤 전 원장은 이번 개편안이 금감원과 금소원 위에 관료 조직인 금융감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소비자보호 강화라는 원래 목적은 빛이 바라게 됐다고 바라봤다.
기존 금융위가 금융산업 정책 기능이 이관될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 정책 기능을 맡을 금감위로 기계적으로 분리되면서 ‘모피아’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 전 원장은 “현재 개편안에서 재경부+금감위는 모피아 1중대, 2중대 느낌”이라며 “행정기구인 금감위 설정을 전제로 금감원과 금소원이 이를 보좌하는 형태인데 도대체 별도의 공무원 사무처 조직이 왜 필요한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 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 부르는 말이다.
정치권 안팎에 따르면 신설될 금감위 조직은 약 130명 규모로 꾸려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당초 논의되던 의사행정담당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고위관료가 갈 수 있는 ‘자리’도 오히려 더 늘었다.
윤 전 원장은 금융권 관료 낙하산 인사가 증가하면서 앞으로 금융권 생태계에 정부 입김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모피아 청산을 통해 금융감독 독립성을 확보하고 전문성을 키우자는 구조 개혁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개편안이 실패한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윤 전 원장은 “과거 IMF 외환위기 직후 19명으로 출발한 금감위 사무국 공무원이 이명박 정권 직전에는 150명 수준으로 늘어났다”며 “그 뒤 금감위에 금융정책을 합쳐 금융위가 출범했고 현재 공무원 300명 수준에 이르면서 관치금융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윤 전 원장은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 겸직 금지, 금감위원을 10명으로 늘린 것 등이 모두 공무원 자리 만들기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며 “더군다나 금융위 사무처 관료들이 금감위, 재경부 등으로 순환보직하면서 금융감독은 정부로부터 독립하기 어렵고 이들이 감독정책을 담당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소비자보호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금감원, 금소원의 공공기관 지정,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중징계 권한의 금감위 이관 등도 금융감독의 독립성 훼손과 관치 심화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관치금융의 폐해는 금융산업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금융감독 체계에서 금융사들은 금감원, 금소원, 금감위, 그 위 재경부까지 ‘시어머니’ 4명을 두게 된다.
윤 전 원장은 “비전문가가 봐도 시어머니 4명은 너무 많다”며 “이렇게 관치금융이 심화되면 금융사들은 더더욱 위험부담을 안 지려고 하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안전한 사업만 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한국 금융은 아직 선진시장과 비교해 실력이 부족하다”며 “이에 금융산업이 이자장사가 아닌 금융중개 역할을 강화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관치 아래서는 이런 환경 조성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 감독기구 ‘옥상옥’ 구조, 소비자보호 오히려 약화할 수도
윤 전 원장은 금감위가 금감원과 금소원 위에 군림하는 감독기구의 ‘옥상옥’ 구조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사이 이해상충이라는 근본적 문제 해결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금소원 분리 의미도 가려진다고 봤다.
윤 전 원장은 “금소원의 분리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왜냐하면 앞으로는 개별 금융사의 건전성 업무가 금융감독의 주된 관심사가 되기는 어렵고 오히려 소비자보호와 시스템리스크 관련 감독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다만 현재 개편안은 감독집행을 하는 금감원과 금소원은 분리해놓고 그 위에 감독정책 권한은 금감위에 몰아서 부여했다”며 “실제 이해상충이 생기는 부분은 감독정책 부분인데 여기는 통합형으로 두고 정책을 그대로 따라가는 집행부분을 떼어놓은 엉뚱한 개편”이라고 비판했다.
감독정책에서 이해상충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고 아래 집행부분에서 업무의 비효율성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애초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금융위가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모두 거머쥐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정책과 감독 통합형 구조에서는 금융산업 진흥을 위한 금융사 건전성 보호에 무게가 기울 수밖에 없어 소비자보호 감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의 산업정책 기능은 재경부로 이관하고 감독정책은 금감원으로 합친 뒤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별도로 두는 체계 개편에 관한 논의가 계속돼 왔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금감원에서 금소원을 분리하기는 했지만 금감위를 부활시켜 감독정책 차원에서 이해상충 문제를 방치했다. 결과적으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두 감독기능의 목표와 책임을 명확히 하려는 금융감독 독립성을 강화하는 ‘쌍봉형’ 체제의 장점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전 원장은 “금감위를 신설해 건전성과 소비자보호 두 감독정책을 관장하는 형태에서는 금융사의 건전성을 중요시해 소비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기존 체계의 문제가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상치 못했던 금감위 확대로 금융감독 독립성과 소비자보호 모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개편안”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2025년 7월2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윤 전 원장은 현재 시점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관한 방안도 제시했다.
윤 전 원장은 “최선책은 금통위와 한국은행처럼 금감위 기능을 각각 민간 공적기구인 금감원, 금소원 내부로 집어넣어 건전성과 소비자보호 감독과 정책을 내장형으로 분리하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차선책으로는 금감위 규모를 의사행정업무 지원 최소 인력으로 제한하고 금감원, 금소원의 공공기관 지정 폐지, 금융기관장 중징계권의 금감원 존치 등으로 보완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한국은행 수장이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회의)’를 확대 발전시킨 금융안전협의회(가칭) 법제화 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 전 원장은 한국은행, 캐나다 맥길대 교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을 지내고 한림대 경영대, 숭실대 금융학부, 서울대 경영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단에 선 교수 출신 금감원장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제13대 금감원 원장에 임명돼 금감원의 감독기능을 강화하면서 ‘호랑이 금감원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1년 5월까지 금감원장으로 일해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3년 임기를 채운 3번째 원장이기도 하다.
윤 전 원장은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던 2000년 기획예산처 산하 금융감독 조직혁신 작업반 팀장을 맡았다. 진보성향의 학자들과 함께 2013년에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문을, 2016년에는 '모델금융감독법의 구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냈다.
2017년에는
문재인 정부 금융정책 뼈대를 세우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금융행정업무 전반을 점검하고 금융행정혁신 보고서를 제출했다.
윤 전 원장은 올해 7월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도 참여하는 등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소비자보호 강화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 전 원장은 이날도 인터뷰 마지막까지 “금융은 한국 경제 선진화에 땔감을 공급해야 할 핵심산업”이라며 “이런 금융의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감독이 제대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