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면세점 인천공항 제2터미널 화장품·주류 매장 전경. <호텔신라> |
[비즈니스포스트]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에게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다.
두 면세점은 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내려달라며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갈등을 빚어왔다. 법원은 두 면세점의 입장을 받아들여 임대료 인하 강제조정까지 내렸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의제기를 하면서 아름다운 결말은 사실상 물 건너간 모양새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앞에 놓인 선택지는 3가지다. 지금처럼 임대료를 내든지, 본안 소송으로 가서 법적 다툼을 벌이든지, 아니면 철수하든지다.
17일 면세점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신라·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 면세사업을 놓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6일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이의신청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신라·신세계면세점이 법원에 신청한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인하 조정이 최종 불성립됐다.
공사의 이의신청은 ‘차임 감액 청구 소송’으로 간주된다. 두 면세점이 인지대를 법원에 납부하면 본안 소송 절차가 시작된다.
업계에서는 신라·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 면세사업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본안소송에 3년 이상의 시간과 소송비용이 소요되지만 승소를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는 국가 계약법에 따라 공개입찰을 통해 정해졌고 이를 인하해주면 두 면세점이 제시한 높은 입찰가 제안에 밀린 업체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며 “면세점들이 소송을 가도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신세계면세점 인천공항점 ‘퍼퓸 아틀리에’ 전경. <신세계디에프 |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2023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10년 계약으로 따냈다. 당시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는 기존 고정 임차료에서 공항 이용객 수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신라면세점은 DF1구역에, 신세계면세점은 DF2 구역에 각각 공항이용객 1인당 약 9천 원 수준의 단가를 제출했는데 이는 최저수용금액보다 60% 이상 많은 금액이라 당시에도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두 면세점이 해당 구역 임대료로 공사에 납부하는 금액은 연간 약 320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관광객들 사이 면세점보다 로드숍을 방문하는 소비 추세가 확산하고 고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 저하 등이 맞물리면서 두 면세점은 매달 수십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해당 구역 면세사업에서 손익을 개선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면세사업을 따놓고도 임대료를 내려달라고 손을 든 이유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해당구역 면세 사업을 철수하려면 각각 1900억 원 수준의 위약금을 물고 6개월 동안 영업을 유지해야한다. 다만 입찰을 따낸 구역 운영 기간이 아직 8년가량 남았다. 현재 상황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감수해야 할 누적 적자는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철수 결정이 쉽지 않겠지만 그보다 큰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사업을 계속 안고 갈 유인이 없다”며 “특히 회사 실적을 책임져야 하는 대표가 스스로 따낸 사업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면세점의 수장인 김준환 호텔신라 TR부문장은 지난해 12월 선임됐다. 2023년 공격적 베팅으로 인천공항 면세사업권을 따 낸 유신열 신세계디에프 대표는 올해 대표직을 내려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본안 소송을 이어가거나 현재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사업을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시내 면세점은 마케팅을 펼치면서 단체 고객을 모셔와야 하지만 인천공항 면세점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임 없이 오간다. 또 상징성이 커 인천공항 면세사업을 유치하면 명품 브랜드 등과 협상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면세점이 입찰 당시 과감한 베팅을 한 이유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철수 카드를 선택한 뒤 해당 사업 재입찰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인천공항 사업용 시설 임대 계약에 있어 철수한 사업자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규정은 없다. DF1, DF2 구역 재입찰이 진행되면 임대료는 현재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관측되는데 크게는 현재 임대료보다 40% 낮은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일단 두 면세점이 철수한 뒤에는 재입찰에 들어가는 것이 최적 선택이 되는 셈이다.
다만 이 선택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게 좋게 보일 리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롯데면세점은 2018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가장 높은 임대료를 제시했지만 낙찰에 실패했다. 앞서 해당 구역 면세사업권을 따냈으나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적자가 지속되자 임대료 인하를 요구했고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를 거부하자 약 1900억 원의 위약금을 물고 사업을 철수했는데 이런 결정이 롯데면세점의 석연치 않은 탈락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왔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당시 롯데면세점의 사업제안서가 부실해서 탈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