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미국발 선박 수주 등 조선업 재건을 위해 정부 주도의 '국립 조선소' 설립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조선 업계는 이미 미국 현지 진출, 기술 제휴 전략으로 미국 선박 수주 경쟁력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이 자국 조선 산업 부활을 위해 '국립 조선소' 설립이라는 강수를 꺼내들었다.
미국이 앞으로 대거 발주할 LNG운반선 등 상선 수주를 위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국내 조선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현지 조선소 인수와 기술 제휴 등의 전략으로 일본 조선업보다 미국발 상선 수주 경쟁력에서 한 발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닛케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국가가 직접 조선소를 설립한 뒤,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기는 ‘국유시설의 민간 조업’ 방식을 뼈대로 한 ‘국립 조선소’ 설립을 본격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을 최소 20%까지 끌어올리고, 선박 생산량을 현재 대비 2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박용 선체를 ‘경제안보 상 특정 중요물자’로 지정하고, 설비 투자에 활용할 1조 엔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자민당 의원은 지난 20일 “조선업을 자율적 수송 역량 확보의 핵심 산업으로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조선업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고부가가치 선종의 대표 격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분야에서는 2019년 이후 단 한 척의 인도 실적이 없고, 수주 잔고도 없는 상태다. 선체 용접 등 핵심 공정에서 숙련공 고령화, 고비용 구조, 장기간 보수적 투자 기조 등도 구조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GTT 멤브레인형 화물창 기술 등 글로벌 표준을 적용한 LNG선은 미쓰비시중공업이 2000년대 초반 인도한 3척이 전부다. GTT 멤브레인형 화물창 기술은 LNG 운반선에 적용되는 핵심 화물창(저장탱크) 설계, 제조 기술이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일본 조선업이 단기적으로 한국과 중국 조선업에 미칠 위협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조선 기업들은 이미 전략적 제휴와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 등을 통해 미국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19일 미국 조선사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전략적 포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중형급 LNG 이중연료(DF) 컨테이너선을 공동 건조하기로 했다. 설계와 기자재 구매 대행, 기술 지원은 물론 일부 블록 제작도 HD현대가 맡는다.
지난 4월 미국 군함 전문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맺은 업무협약에 이은 행보로, HD현대는 군함에서 상선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며 미국 조선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화오션은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2024년 12월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내 연안 운송용 상선의 50%를 건조한 실적을 지닌 중견 조선사로, 한화오션을 이를 미국 해군의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MRO)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조선 협력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는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만든 선박을 구매하기보다는 한국이 미국 현지에 투자해 미국 조선업 재건에 기여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2024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이 조선소는 미국 내 연안 운송용 상선의 50%를 건조한 실적을 지닌 중견 조선사로, 한화는 이를 미국 조선 시장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필리조선소 위성 사진. <한화시스템> |
삼성중공업은 LNG선, 드릴십,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FPSO) 등 고부가가치 선종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외국 조선소의 자국 선박 건조와 납품을 금지해온 ‘존스법' 폐지안이 최근 미국 상원에 발의됐다. 이같은 움직임에 따라 일본이 국립 조선소까지 만들어 적극적으로 미국 선박 수주에 나서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법안을 발의한 마이크 리 상원의원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존스법은 미국 가족과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시대착오적 규제”라며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게 만들고, 미국의 에너지 자립과 안보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에도 수차례 존스법 폐지 법안이 무산된 전례가 있는 만큼, 기대감을 낮춰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7일 국회 ‘K-조선산업 재도약’ 세미나에서 “자국 제조업을 우선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동맹국과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업 재건 전략이 충돌하면서 존스법 같은 법안이 실질적으로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박도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