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미국 원전사업 실패로 수조 원대의 손실이 예상되며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주가가 폭락한 데 이어 극심한 자금난도 예상된다.
도시바가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낸드플래시사업의 지분을 대량으로 매각할 가능성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바의 낸드플래시사업 인수전에 뛰어들 수도 있다.
◆ 도시바 최대 위기 직면
로이터는 30일 “도시바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진퇴양난에 빠졌다”며 “핵심사업을 일부 매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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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CEO. |
도시바는 2015년 회계부정사건으로 주요 임원들이 대거 사임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위기에 닥치자 가전제품과 의료기기, 센서 등 기존 사업부를 대거 매각하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구조조정 이후 도시바는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원전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1월 미국 원자력건설사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도시바의 인수금액과 실제 자산가치 차이가 3조 원에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며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도시바는 내년 3월까지인 이번 회계연도 손실규모가 최대 5천억 엔(5조1389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발표를 내놓은 직후 일본증시에서 도시바 주가는 3거래일 연속 폭락해 주당 443엔에서 238엔까지 떨어졌다. 시가총액도 10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스탠다드앤푸어스는 도시바의 신용등급을 대폭 낮추며 “심각한 자금난이 예상되는데다 사업부를 이미 대거 매각한 상황이라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도시바는 PC와 TV사업부를 남겨두고 있지만 시장경쟁력이 낮아 사업가치가 적어 매각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메모리반도체사업부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 SK하이닉스 인수전 뛰어들까
로이터는 도시바가 낸드플래시사업의 지분 30~40% 정도를 매각하며 적극적인 회생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하면 메모리반도체 진출계획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업체들로부터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도시바는 글로벌 낸드플래시시장에서 20%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해 삼성전자에 이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차세대 기술인 3D낸드에서 경쟁업체들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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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XMC반도체 등 중국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메모리반도체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지만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들이 충분히 도시바에 눈독을 들일 수 있다. 중국기업들은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의 지분확보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도시바의 기술력에 중국업체들의 강력한 자금여력이 더해질 경우 시장진출이 가속화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지분을 인수할 경우 중국업체들의 진출을 막고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을 새로 확보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충분한 기술력과 생산시설을 확보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
SK하이닉스는 3D낸드 기술력에서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앞서있지만 생산시설이 크게 부족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다. 중국업체와 협력해 생산시설을 확보할 가능성도 나왔다.
SK하이닉스가 중국과 협력할 경우 기술유출 가능성이 있어 결국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도시바와 손을 잡으면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공유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이전부터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는 전망을 꾸준히 내놓았다. 이번에 도시바가 최악의 경영난에 휩싸이며 이런 가능성이 더 유력해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와 합작법인을 세워 생산시설을 확보할 수 있다. 도시바도 메모리반도체가 사실상 유일한 사업부문으로 남은 만큼 적극적으로 투자금 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중국업체의 진출확대 위기에 직면하는 동시에 도시바 지분확보로 낸드플래시사업에서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중국업체들이 만만찮은 자금동원력을 앞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SK하이닉스의 성장을 위해 SK그룹 차원의 강력한 지원도 이어져야 할 것이라는 주문이 나온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연말인사에서 승진한 뒤 SK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수펙스추구협의회 ICT위원장에 오르며 그룹 내 위상을 강화했다. 지주사 SK가 내년에 지배구조개편으로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승격한 뒤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