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징이 잠자고 있던 전력직접구매제 제도의 활성화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대기업들의 이른바 '탈한전' 확산 조짐에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최근 국내 전력시장에서 잠자고 있던 전력직접구매 제도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한전의 독점적 시장구조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한전은 부채가 200조 원에 달하는데 전력다소비 기업들이 전력구매소에서 직접 전력을 도매가격으로 사는 비중이 늘어나면 이른바 큰손이 빠져나가면서 재무 안정성과 시장 지배력 유지가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 전력직접구매 제도의 본질과 활성화 배경
전력직접구매 제도는 2001년 전력시장 구조 개편 당시 도입되었지만, 한전의 전기 소매가격이 도매가격보다 저렴해 사실상 활성화되지 못했던 제도였다.
이 제도는 수전설비 용량이 3만kVA(킬로볼트암페어) 이상인 대규모 전기사용자가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회사 등으로부터 직접 전력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전력거래소는 정부 산하 준정부 기관으로, 전력시장 참여자 간 투명한 가격 입찰과 정산 등 시장 운영을 담당한다.
하지만 2023년 이후 한전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전력직접구매 제도가 재조명되면서 한전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예컨대 2024년 말 SK가스의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어드밴스드가 전력직접구매를 신청해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를 시작했으며, 2025년에는 LG화학이 이에 동참하는 등 대기업들이 직접구매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규모 전력 소비 기업들이 한전의 소매요금을 뛰어넘어 시장가격에 기반한 전력 구매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 한전의 독점 구조 붕괴와 재무구조 위기
기존 전력 시장은 한전이 전력 공급망과 판매를 독점하는 구조였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일반 가정까지 대부분 한전을 통해 전력을 구매해왔다.
이 독점 체제는 한전의 수익 기반을 견고히 했으나, 전력직접구매 제도의 활성화 조짐은 이 균형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3만kVA 이상의 대규모 산업용 고객이 전력거래소를 통한 직접구매를 확대하면서 한전의 주요 수익원이 이탈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대형 고객은 전체 전력 판매에서 29% 이상(약 526개 사업장)의 비중을 차지하는 ‘큰손’들이기 때문에 이탈 시 한전의 매출 및 영업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한전은 이런 고객들이 이탈하면서 재무 압박이 심화되어 이미 약 200조 원에 달하는 부채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한전은 부족한 재원을 보전하기 위해 중소기업 이하 및 일반 가정용 전기요금의 추가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와 동시에 경제 전반에 위기감을 조성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 김동철 사장의 고민과 경영 전략
김동철 한전 사장은 2024년 한전이 8조 원대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 상황이 다소 호전된 국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2025년 ‘New 비전’을 선포하며 한전을 글로벌 에너지 리더로 도약시키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김 사장은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4가지 전략방향을 제시했다.
4대 전략 방향은 △본업사업 고도화(국가전력망 적기 건설 및 고객 감동 서비스 구현) △수익구조 다변화(에너지 신기술․신사업 기반 신성장동력 확보) △생태계혁신 주도(R&D 혁신 및 기술사업화로 전력산업 생태계 육성) △조직효율 극대화(기업체질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경영기반 확립)이다.
김 사장은 이를 통해 한전을 2035년까지 매출 127조 원, 총자산 규모 199조 원, 해외·성장사업 매출 20조 원, 전체 인원 2만6천 명에 달하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는 비전 선포식에서 "국민편익을 제고하고 에너지생태계 혁신성장 견인을 위해 전 직원이 합심하여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전력직접구매 활성화라는 새로운 악재는 김 사장의 경영 부담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대기업들이 직접구매를 확대할 경우 한전은 안정적인 수익구조 유지가 힘들어지고 부채 감축 및 전력망 투자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커진다.
김 사장은 이에 대응해 영업 효율화, 수익 다변화, 비용 절감 등 경영혁신과 더불어 정부와 협력해 적절한 전기요금 정책 마련 및 전력시장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 전력시장과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
전력직접구매 제도 활성화가 가져올 시장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전력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대기업의 직접구매 확산은 한전 독점 체제의 해체를 촉진하는 동시에, 전력시장 내 경쟁을 활성화해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전력 거래 활성화도 제도 개선과 맞물려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전력 공급 안정과 요금 형평성 문제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이 대규모 산업용 고객 이탈로 인해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요금을 올려 부족분을 보충하면, 전력비 부담은 중소기업과 가정용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김동철 사장이 이와 같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