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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

직원들과 토론 즐겨, 신속한 의사결정 [2016년]
이규연 박경훈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12-30 08: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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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
▲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이덕훈은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이다. 금융계의 대표적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조선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부실 책임과 관련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 웨인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퍼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재무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부총리의 자문관을 역임했다.

금융개혁위원회 행정실장과 금융발전심의회 은행분과 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주로 금융시스템의 연구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과 한빛은행 은행장을 역임했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초빙교수를 지내다 사모펀드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를 세워 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수출입은행을 이끌면서 한국 제조업의 구조조정에 관여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학자로서 ‘거시경제와 구조조정 큰 틀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경제학자’로 평가받았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을 맡으면서 경영자로서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실적주의자’라는 평가를 얻었다.

다채로운 이력 덕분에 금융분야 브레인으로 평가받는다. 재무부장관 자문관부터 축협중앙회 이사, 금융산업발전위원회 심의위원, 한국조폐공사 사외이사 등 학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을 맡을 당시 실무적인 경험이 부족했지만 무리없이 경영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직원들과 토론을 즐겨하고 격식없이 어울리는 스타일로 결재라인을 축소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등 신속한 의사결정을 유도했다.

‘부실을 개혁하는 전도사’라는 별명도 있다.

2001년 취임한 우리은행을 공적자금 투입은행에서 불과 3년 만에 국내 최대수익을 올린 우량은행으로 바꿔놨다. 2003년 8월 우리은행이 국내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비상경영체제 종결을 선언했다. 이후 3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달성했다. 특히 합병은행의 고질적 문제인 파벌 싸움을 없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장에 취임한 뒤 부실채권 관리에 잇따라 실패하며 수출입은행의 건전성이 더욱 악화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2015년 9월 말 기준 수출입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은 9.44%로 10%미만인 곳은 국내은행 가운데 수출입은행이 유일했다. 수출입은행의 BIS비율이 10%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었다.

수출입은행장 취임 이후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 외에 대외활동을 자제하면서 ‘은둔형CEO'로 분류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의 수장으로서 조용히 제역할만 하겠다는 뜻이 높게 평가됐지만 ’소통의 부재‘로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덕훈은 서강바른금융인포럼과 서강금융인회(서금회) 등에서 활동하는 서강대 금융인맥의 핵심인사다.

2017년3월 수출입은행 은행장 임기가 끝나지만 연임은 힘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조선해운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부실을 방관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1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일했고 1990년 경제기획원 장관의 자문관을 지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 금융팀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98년 상업한일은행 합병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산업은행 사외이사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대한투자신탁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 한빛은행 은행장에 취임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을 맡았다.

2002년 한빛은행을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우리은행 은행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일하던 가운데 2012년 사모펀드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를 설립해 회장을 맡았다.

2014년 3월 제18대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에 취임했다.

◆ 학력

1967년 삼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서강대학교 수학과와 경제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웨인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1981년 퍼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한귀선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장녀는 이덕훈이 우리은행장을 역임하던 2003년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 상훈

2003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2003년 다산금융상 대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03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2003년 다산금융상 대상을 수상했다.

어록


“우리 조선사들은 2008년 이후 주력 선종의 수주감소와 자국 발주량 부족 등으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특히, 올해 수주량은 전년 대비 87% 감소하는 등 역사상 유례없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해운업도 물동량 증가세의 2배를 넘는 선복 공급과잉과 2008년 대비 최대 92% 하락한 저운임기조 등 사상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2016/11/08, 조선·해운업 동반 회생을 위한 정책제안 대토론회에서)

“조선업과 해운업은 지역경제뿐 아니라 수출, 고용 등 전후방산업을 포함해 경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우리나라 대표 기간산업이다. 조선·해운업이 동반 회생하는 것은 개별 산업의 문제가 아닌 국민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국가발전의 동력에 대한 문제다. 이를 위해 저희 한국수출입은행은 금융 분야 버팀목으로서 조선·해운업 상생발전방안을 마련하고 국민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산업정상화를 위해 주어진 소명을 다하겠다.” (2016/11/08, 조선·해운업 동반 회생을 위한 정책제안 대토론회에서)

“대우조선 노조가 조건없는 업무협약 이행 및 쟁의행위금지 등을 포함하는 노사확약서를 제출하지 않는 것은 원칙적으로 대우조선 정상화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2016/11/14, 기업구조조정 현안점검회의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 전경련 회원사에 대한 지원이 많은 것은 전경련 회원들 중 대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업, 해외플랜트 등에 대기업이 많은 것이 원인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지원 비중도 늘려나가겠다.” (2016/10/11,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기업에 편중된 지원에 대해 설명하며)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예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유동성 위기가 2017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정부의 추가지원이 필요하지만 1조 원을 대우조선해양에 집행한 뒤 닥칠 유동성 문제도 고민해야한다.” (2016/10/11, 기획재정회의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사태에 대해 보고하며)

"상황이 아주 안좋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바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살아날 수 있도록 철저한 보완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 자체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지만, 유동성과 수주 절벽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축소해서 생존전략을 세우고 대응할 수 있느냐에 대해 저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있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협의가 이뤄져 그것(대응 방안)이 잘 작동될 수 있길 바란다. 채권금융기관이 문제있는 기업을 이렇게 오래 끌고 가는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이례적이다. 정리하거나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데,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2016/10/11, 기획재정회의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차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박계가 누군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게 내 인사에 반영된 것은 한 번도 없으며 인사를 거기 영향받을 이유도 없다. 수출입은행은 2009년부터 조선업이 어려울 것은 예견한 사항이고 2010년부터 이미 부실로 시장에서 실패한 걸 끌어안고 정리하고 있으며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이 기업부실과 관련된 부분을 제대로 풀어드리지 못한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을 타계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부실비율 등의 측면을 몰라서 부실을 낳고 있는 게 아니고 이미 일어난 부실을 껴안은 것이다.” (2016/10/11, 국회 기획재정회의 국정감사에서 수은은 인사를 할 때 친박계 인사를 위주로 하는지에 답변하며)

"삼성중공업과의 협업만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사용해 자구안을 마련했다. 공정 등 모든 프로세스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10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6/10/11, 국회 기획재정회의 국정감사에서 수출입은행의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자구책을 설명하며)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천 년의 인류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다. 그는 그렇게 자신보다 수천 년을 더 살 칭기즈칸이란 이름을 남겼다. 칭기즈칸의 대제국건설 성공비결로 기동력이 뛰어난 몽골말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몽골 현지에서 실제 수천 마리의 몽골말이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관을 보면서 한국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국인의 근면, 끈기, 상황적응력 등이 몽골말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세계경기가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너무 막막하다고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말라.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난 칭기즈칸이 됐다’는 칭기즈칸의 말이 새삼 귓전에 맴돌았다.” (2016/08/15,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 ‘대한민국, 칭기즈칸의 지혜를 빌릴 때다’에서)

“국가 전체적인 차원의 문제가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실무적으로도 서별관회의 전에 검토가 됐다. 이른 시일 안에 해결했으면 좋겠지만 여건이 그렇지 않다.” (2016/06/30, 국회 정무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서별관회의에 참석했는지’라는 질문에 답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민 기대치에는 충분치 못한 것 같다. 사퇴는 생각해보겠다.” (2016/06/30, 국회 정무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사퇴할 생각은 없는지’라는 질문에 답하며)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악역을 떠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6/06/30, 국회 정무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조선업 부실에 국책은행 책임론이 불거지는 데 대해‘ 발언하며)

“건설업이 당면한 작금의 위기를 타파하고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6/05/19, 국토교통부와 수출입은행의 해외인프라개발 업무협약 체결식에서)

“조만간 중남미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니카라과와 프로그램 미션을 추진해 경제개발에 기여도가 높은 중장기 국가사업계획을 확정지을 것이다.” (2016/04/11, 니카라과 정부가 추진하는 태양광에너지 공급사업 차관공여계약서에 서명하며)

“한계기업을 엄정히 구조조정하고 부실여신과 파업효과를 최소화 할 것이다. 성동조선해양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살리려고 한다. 정상화 기틀을 빠른 시간 안에 마련해 일시적으로 유동성 부족을 겪는 기업에는 충분한 자금지원을 통한 정상화를 추진할 것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 투자할 계획이지만 기존 은행들이 투자하는 산업이라면 과감히 철수할 것이다. 일반은행은 감내할 수 없는 리스크를 지닌 산업, 신성장동력을 지닌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2016/01/25, 한국수출입은행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수출입은행 건전성 부실에 관해서는 수은이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중은행과 고정이하여신비율 등을 비교해 건전성을 논할 수 없다. 태생적으로 기업의 위험을 끌어안고 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BIS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취약한 것이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10년부터 중소조선사와 해외건설 등에서 많아진 것으로 그 부분을 제외한 고정이하여신비율 0.6%는 기업금융을 하는 은행 중에선 최고 수준이다. 2015년 처음 연간 순이익도 1조원을 넘어서는 등 수익성도 높아지고 있어 건전성,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다.” (2016/01/25, 한국수출입은행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임명장따라 가는 것이다.” “내가 알아야 대답을 하는데 내가 알지 못한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책금융기관은 정부기관과 비슷하다. 선택권없이 임명장따라 가는 것이다. 인사문제라 나도 모르는 것이고 언론에서 나오는 내용만 알고 있다.” (2016/01/25, 한국수출입은행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업은행회장 내정설에 대해 답변하며)

“뼈를 깎는 성찰과 내부혁신을 통해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야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고 재도약을 기약할 수 있다.” (2015/12/22, 수출입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경영쇄신 결의대회’에서)

“현재의 문제는 과거 한국 기업들이 중동 플랜트 부문에서 제살깎아먹기 경쟁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신흥 시장에서 주요 발주처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2015/12/10, ‘한국수출입은행장 초청 해외건설 CEO 조찬 간담회’에서)

“민주주의에 기초한 시장자본주의 사회의 장점은 대화와 타협으로 이런 갈등을 극복해 가며 사회를 더욱 성숙,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불신이 널리 퍼지면 상호간 이견 조율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며 신속한 의사결정도 이뤄지지 않아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게 된다.” (2015/12/04, 중앙일보 칼럼인 오피니언 ‘선진국 진입 가로막는 불신의 벽’에서)

“근세에 영미권 국가들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갈등을 발전적으로 극복하면서 경제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적 신뢰를 확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바로 합리성, 공정성, 투명성이 있다. 이들은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설정된 합리적 제도를 어떤 단기적 상황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실행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갔다.” (2015/12/04, 중앙일보 칼럼인 오피니언 ‘선진국 진입 가로막는 불신의 벽’에서)

“한국사회는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불신의 확대가 한국 경제의 회복과 발전을 지연시키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사회 각계각층이 합리성과 공정성 복원을 기초로 사회의 신뢰성 회복과 갈등 극복을 위한 협력에 나서야할 때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유독 귓전을 맴돈다.” (2015/12/04, 중앙일보 칼럼인 오피니언 ‘선진국 진입 가로막는 불신의 벽’에서)

“수출입은행과 사우디전력공사 간 기본협정 체결은 우리 기업의 전통적인 수주 텃밭인 사우디시장에서 한국기업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중동지역 수주감소세를 반전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통상 발전소 건설사업에는 다수의 국내 중소, 중견기업이 하도급업체로 참여하는 만큼 중소, 중견 기업의 수출유발효과 및 고용창출 효과까지 기대된다.” (2015/12/03, 사우디전력공사에 30억 달러의 금융지원 협약을 맺으며)

"올해 중국과 유로존의 경기침체 우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일본의 엔저 심화 등으로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금융기관인 수은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우리 수출기업들에게 필수 영양소를 공급하는 금융비타민이 될 것이다." (2015/01/26,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수출입은행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 일을 하기 위해 수출입은행에 있는 것이다.” (2014/10/23,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벽을 넘기 위해선 해외건설과 플랜트산업을 필두로 수출이 내수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 수출입은행은 우리 기업들이 금융지원을 받지 못해 해외수주를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올해 금융지원을 당초보다 3조 원 늘리는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 (2014/07/31, ‘해외수주 금융지원을 위한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초청간담회’에서)

“같은 밀가루로 만들어도 맛있는 빵과 맛없는 빵이 나온다. 기업의 수출입을 지금보다 한단계 더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실업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수출입은행을 경영하겠다.” “수출에는 상품만 있는 게 아니라 플랜트와 원전, SOC, 대규모 주택 건설, 자원개발 등이 있다. 기업들이 자본력뿐 아니라 정보와 관계부족에서 겪는 제약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2014/03/11, 한국수출입은행장에 공식 취임식에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라면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 유연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 (2013/01/06,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주목받자)

“금융법이 영역별로 구분돼있어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설립과 금융거래, 감독, 퇴출 등 기능별로 재편된 통합금융법이 필요하다.” (2003/04/09, 동북아 경제포럼에서 ‘통합금융법’ 필요성 언급하며)

“우리나라 은행들 중 차별화된 은행이 과연 무엇이 있느냐. 인수합병이 붐처럼 일고 있지만 나만의 경쟁력이 없이는 합병해도 결국 마찬가지일 뿐이다.”(2002/09/11, 우리은행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오늘날 업종을 불문하고 1등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는 ‘ALL OR NOTHING’의 냉혹한 원리가 시장에서 하나의 법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002/03/06, 한빛은행장 취임 1주년 기념사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금융조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은행도 반도체나 철강처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2001/03/05, 한빛은행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실무경험이) 적은 건 사실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금융부문은 어느 산업부문보다도 더 원론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한투자신탁에서 새로운 시스템과 제도관행을 정착시키는데 주력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위험관리보다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다.” (2001/03/05, 한빛은행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실무경험이 적다’는 지적에 대해)

◆ 평가

학자로서 ‘거시경제와 구조조정 큰 틀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경제학자’로 평가받았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을 맡으면서 경영자로서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실적주의자’라는 평가를 얻었다.

다채로운 이력 덕분에 금융분야 브레인으로 평가받는다. 재무부장관 자문관부터 축협중앙회 이사, 금융산업발전위원회 심의위원, 한국조폐공사 사외이사 등 학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을 맡을 당시 실무적인 경험이 부족했지만 무리없이 경영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직원들과 토론을 즐겨하고 격식없이 어울리는 스타일로 결재라인을 축소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등 신속한 의사결정을 유도했다.

‘부실을 개혁하는 전도사’라는 별명도 있다.

2001년 취임한 우리은행을 공적자금 투입은행에서 불과 3년 만에 국내 최대수익을 올린 우량은행으로 바꿔놨다. 2003년 8월 우리은행이 국내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비상경영체제 종결을 선언했다. 이후 3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달성했다. 특히 합병은행의 고질적 문제인 파벌 싸움을 없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장에 취임한 뒤 부실채권 관리에 잇따라 실패하며 수출입은행의 건전성이 더욱 악화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2015년 9월 말 기준 수출입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은 9.44%로 10%미만인 곳은 국내은행 가운데 수출입은행이 유일했다. 수출입은행의 BIS비율이 10%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었다.

수출입은행장 취임 이후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 외에 대외활동을 자제하면서 ‘은둔형CEO'로 분류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의 수장으로서 조용히 제역할만 하겠다는 뜻이 높게 평가됐지만 ’소통의 부재‘로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덕훈은 서강바른금융인포럼과 서강금융인회(서금회) 등에서 활동하는 서강대 금융인맥의 핵심인사다.

2017년3월 수출입은행 은행장 임기가 끝나지만 연임은 힘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조선해운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부실을 방관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 기타

2001년 8월 한빛은행 신입행원과 한 ‘소주토론’이 화제가 됐다. 한빛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시절을 통틀어 행장이 신입행원과 술자리를 연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덕훈은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대포집에 52명의 인턴행원들을 초대해 "영업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빛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2004년 우리은행이 ‘한국의 은행 100년사’를 발간했는데 이 책자발간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이덕훈이다. 책에는 1896년 조선은행 탄생 이후 현재까지의 국내 은행의 발자취를 담았다. 이덕훈은 2002년 우리은행장 재직 당시 “외환위기로 사라진 은행들을 추도하면서 국내 은행의 역사적 역할을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내 주요 은행과 금융지주사 수장 교체가 있을 때마다 유력한 후보로 언급됐다. 2013년 10월에는 차기 한국은행 총재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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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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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해
박씨와 같은 서강대 출신으로 이젠 504호로 들어가서 공짜밥 먹게 되겠구나!!   (2017-11-22 06:3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