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 출시할 신형 인공지능 반도체 성능이 미국의 대중국 규제 정책에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화웨이의 반도체 기술 발전과 중국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 역량 강화를 견제하는 일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
[비즈니스포스트] 엔비디아와 AMD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출시할 새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성능 경쟁력이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지 고객사들이 화웨이 제품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사양을 갖춰내야만 중국의 반도체 자체 개발 의지를 꺾고 미국 기업들에 수혜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각)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회계연도 1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우리가 중국 시장의 수요에 대응할 흥미로운 제품을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의 규제로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인공지능 반도체 ‘H20’을 판매하지 못하게 됐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반도체를 활용해 미국과 인공지능 기술 경쟁에서 승기를 잡는 일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젠슨 황 CEO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를 개발할 수 없다는 판단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반영돼 있다며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는 콘퍼런스콜을 마친 뒤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도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은 미국의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인공지능 반도체 기반의 생태계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엔비디아와 같은 미국 기업이 아닌 중국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젠슨 황 CEO는 미국 정부 규제로 중국에서 엔비디아 점유율이 95%에서 50%까지 하락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현지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엔비디아는 바이든 정부 시절 중국에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를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가 도입되자 기준치에 맞춰 성능을 대폭 낮춘 H20을 선보였다.
트럼프 정부에서 H20 중국 판매마저 사실상 금지되며 엔비디아가 이보다 더 저사양의 신형 인공지능 반도체를 개발해 판매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젠슨 황 CEO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중국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제품은 없다”며 “잠재적으로 약 500억 대 수준에 이르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에 엔비디아 반도체 중국 수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앞으로 출시할 신제품의 판매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펼친 것으로 해석된다.
▲ 엔비디아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제품 홍보용 이미지. |
젠슨 황 CEO는 “지금은 중국에 공급할 수 있는 제품이 없지만 우리는 여러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며 “적당한 시점이 되면 미국 정부와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엔비디아와 AMD가 이미 7월 출시를 목표로 미국의 규제 기준을 충족하며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특히 최신 기술인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기반으로 한 B20을 출시해 딥시크와 같은 중국 인공지능 기술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개발중인 제품이 미국 정부에서 수출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젠슨 황 CEO가 출시 여부를 확실하게 언급하지 못 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정부가 지금과 같은 수준의 규제를 유지해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을 계속 차단하거나 성능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설정한다면 이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젠슨 황 CEO는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가 중국 화웨이의 인공지능 반도체에 성장 기회를 열어줬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중국 고객사들이 엔비디아를 대체할 수 있는 반도체 공급사를 적극 물색하자 화웨이가 단기간에 기술력을 높여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화웨이의 역량이 지금보다 더 발전한다면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는 결과적으로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오히려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경쟁력을 더 빠르게 키우는 꼴이다.
엔비디아는 결국 중국에 수출하는 인공지능 반도체가 화웨이의 경쟁 제품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 현지 수요를 빼앗기지 않을 정도가 돼야 한다는 점을 트럼프 정부에 적극 설득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중국 시장 전용으로 개발되는 새 반도체의 성능이 지나치게 높다면 이는 미국 정부가 처음부터 우려했던 대로 인공지능 기술 주도권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정부와 엔비디아 모두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성능 기준을 파악해 규제 수위 및 반도체 사양을 정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젠슨 황 CEO는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대통령은 확실한 계획과 비전을 두고 있다”며 “나는 그를 신뢰하고 있으며 우리가 받고 있는 제약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