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스팜 트레일워터 참가자들이 24일 출발지인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에서 출발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인제=비즈니스포스트]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2025년 5월24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인제의 푸른 숲길은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며 걷는 이들의 땀과 발걸음으로 가득 찼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주최한 올해 ‘옥스팜 트레일워커’에는 총 205개 팀이 참가해 성황리에 진행됐다.
올해 대회는 참가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뜨거운 열정이 더해지며 어느 해보다 더욱 뜻 깊고 감동적 행사로 빛났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4명이 한 팀이 되어 38시간 이내에 100km를 완주하는 '도전형 기부 프로젝트'다.
1981년 홍콩에서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매일 물을 얻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전 세계 빈곤 지역 사람들의 현실을 함께 공감하고자 기획됐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완주에 그치지 않고 주변에 대회의 의미를 알리며 팀당 50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으는 ‘기부 펀딩’에도 참여한다. 나눔을 실천하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세상에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힘이 됐다고 자부한다.
이번 대회에는 특히 특별한 사연과 목표를 품은 참가팀들이 눈에 띄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그 뜨거운 현장을 찾아 이들이 만들어낸 나눔의 이야기와 진심 어린 열정을 직접 담았다.
▲ 김종균씨(맨 왼쪽부터), 김은하수씨, 공민교씨, 송정아씨 등 '오합지존 팀'이 24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현장에서 50km를 완주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합지존> |
◆ 결혼 앞둔 예비부부의 50km 첫 도전, ‘오합지존’
오합지존 팀은 오는 6월14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김종균씨와 김은하수씨의 특별한 도전을 담았다.
우연히 낚시 체험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100대 명산 등반과 마라톤을 함께 즐겨온 사이로, 이번 옥스팜 트레일워커 50km 완주를 시작으로 100km 도전까지 ‘버킷리스트’로 삼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꿈은 훗날 두 자녀와 함께 4인 가족 팀을 이뤄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가하는 것. 가족 모두가 나눔의 의미를 몸소 실천해 보려 한다.
오합지존이라는 팀 이름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던 사람들이 모였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가하고 싶었던 공민교씨는 한 등산 모임에서 송정아씨를 만났고, 이후 송정아씨가 서울 둘레길을 걷던 중 예비부부를 만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렇게 우연한 만남과 걷는 인연이 이어지며 팀이 결성됐고, 이들은 함께 예비부부의 도전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예비부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러닝, 등산, 게임 모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 펀딩에 동참하며 훈훈함을 더했다.
덕분에 목표 기부금 50만 원을 3시간 만에 거의 달성하며 주변의 따뜻한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오합지존 팀은 기록보다 부상 없이 즐겁게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김종균씨와 김은하수씨는 결혼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의 50km 도전에 대해 “인생에서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 김홍상씨(맨 왼쪽부터), 김지희씨, 김의봉씨, 임남선씨 등 '클린워터 팀'이 24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코스를 달리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 1천만 원 기부 펀딩 1위 ‘클린워터’, 작은 나눔이 만든 큰 기적
올해 옥스팜 트레일워커에서 1013만 원이라는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으며 펀딩 1위를 차지한 팀은 바로 클린워터다.
해병대 동기인 김의봉씨와 임남선씨, 그리고 고액 기부자로 인연을 맺었던 김홍상씨와 김지희씨로 구성된 40대 남녀 혼합팀이다.
팀 이름 '클린워터'는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하겠다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이렇게 지었다.
클린워터 팀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1만 원씩 1천 명에게 기부 받아 총 1천만 원을 모으는 것.
팀원들은 지인들에게 옥스팜 트레일워커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적은 금액이라도 기꺼이 나누는 ‘작은 기부’의 힘을 전파했다. 그 결과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냈다.
특히 특공무술학원을 운영하는 임남선씨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행사 의미를 전하며 기부 참여를 독려해 일상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모범이 됐다.
클린워터 팀은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에도 한국 대표로 참가한 바 있다. 장대비 속에서도 100km를 완주한 이들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응원이 어우러진 홍콩 현지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기부는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의봉씨는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정말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며 “함께 하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옥스팜을 통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여동열씨(맨 왼쪽)와 백승지씨(맨 오른쪽)가 100km 완주에 성공한 '아재밌다 팀' 팀원 권용일씨(왼쪽에서 2번째), 송근무씨(왼쪽에서 3번째)와 25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 네 번째 ‘꼴찌 완주’, ‘아재밌다’의 유쾌한 도전
“이제 그만하자”를 매년 외치면서도, ‘아재밌다’는 올해로 벌써 4번째 100km 도전에 나섰다고 한다.
여동열씨, 백승지씨, 권용일씨, 송근무씨로 구성된 이 팀은 LG와 CJ 등 대기업에서 연구원과 엔지니어로 일하는 40대 동료들이다. 대학 시절 대구의 한 성당 성서 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은 지금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강원도 인제의 트레일워커 코스를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이들은 자신들을 '꼴찌 완주'의 전통을 잇는 팀이라고 유쾌하게 소개했다.
2019년 첫 참가 당시 백승지씨가 꼴찌로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대회에서도 팀원들이 차례로 꼴찌를 기록하면서 ‘꼴찌 완주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들은 기록에 연연하기보다는 "4명이 모두 함께 무사히 완주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지난해에는 권용일씨의 아내가 대회 3일 전에 출산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2명의 팀원이 장대비 속에서도 36시간 만에 100km를 완주하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은 "힘든 여정이지만 그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옥스팜 트레일워커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매년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를 밝혔다.
백승지씨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옥스팜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걷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보면서 점점 더 깊이 이 대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며 “옥스팜이 돕는 이들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그것이 바로 옥스팜 트레일워커의 진짜 매력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 옥스팜 트레일워터 참가자들이 24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트레일워커 코스를 지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이번 대회를 통해 23일 자정 기준 약 2억3500만 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이 기부금은 전액 국제구호개발 자금으로 사용돼, 식수와 위생 지원을 포함한 전 세계 긴급 구호 현장에 전달될 예정이다.
참가자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각자의 특별한 사연이 모여 만들어지는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단순한 기부 행사를 넘어, 함께 걷는 즐거움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매년 열리는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www.oxfamtrailwalker.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