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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옥스팜 100km 트레일워커 2025,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김환 기자 claro@businesspost.co.kr 2025-05-29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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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옥스팜 100km 트레일워커 2025,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비즈니스포스트 기자들로 구성된 '인제 집에 가자 시즌3' 팀이 CP(쉼터) 1에서 CP 2를 향해 걷고 있다. 기자들은 도전자로 남겠다고 다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인제=비즈니스포스트] "평소 운동? 체력? 그런 것 다 필요 없어요. 솔직히 정신력만 있으면 돼요."

24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리는 옥스팜 트레일워커 100km를 위한 팀원을 모집하며 습관적으로 내뱉은 홍보문구였다. 필자가 지난해 첫 참가 때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지난해 100km를 완주했는데 올해라고 다를 건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필자는 우리 팀의 속도를 책임진 ‘에이스’였고 올해 우리 팀에는 헬스 PT 경력 3년에 빛나는 출중한 선배도 합류했다. "나야 그때보다 적당히(!) 살집이 오르긴 했지만 정신력만 있다면야."

사실은 대회 한 달 전부터 옥스팜이 100km 여정에서 제공하는 끼니를 먹을 생각부터 났다. 산골의 초여름을 코앞에 뒀으니 ‘별미’ 인제산 황태해장국에 몰려들 산파리를 어떻게 쫓아낼까. 이번 식단에는 고기, 단백질도 좀 추가돼 있으면 좋겠다!

올해로 ‘시즌3’를 맞은 우리 팀도 아침은 언제 먹고, 지난해 CP(쉼터)에서 받은 컵라면이 기억에 남는다는 둥의 잡담을 나누며 24일 새벽 6시 100km의 첫 발을 내딛었다. 100km는 CP 1부터 결승점인 CP 10까지로 이뤄져 있으니 약 10km마다 적절히 잘 쉬기만 하면 된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트레일워커 1일차 인제 천리길은 참가자들에게 차디찬 비바람을 하사했다. 첫날 내내 비가 내렸고 참가자들은 드높은 산을 올려다보며 바람막이에 우비를 덧입었고 추위에 비박용 은박 담요를 두르기도 했다.

  거기에 오르막은 어찌나 긴지. 팀원들과 주고받던 가벼운 농담은 이내 거친 숨소리로 바뀌었다. 팀원들이 휴식을 요구하는 빈도도 잦아졌다.
 
[체험기] 옥스팜 100km 트레일워커 2025,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인제 집에 가자 시즌3' 팀이 곰배령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굳은 날씨에 사진만 찍고 급히 지나쳤다. 내년에도 코스에 포함된다면 '천상의 화원'을 만끽해 봤으면 좋겠다. <비즈니스포스트> 

CP1로 가는 중에 만난 ‘천상의 화원’ 곰배령에서도 유럽 패키지 여행객마냥 사진만 찍고 바로 지나쳤다.

그때 분위기를 뒤바꾼 것은 평소 엉뚱하기로 소문난 한 팀원이었다.

다들 휴식시간에 산길 적당한 바위를 골라 앉아 간간히 숨을 고르던 때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요구했다.

우리 팀에 후원해 준 직장동료와 주변인들에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대본까지 써 왔다고 했다. 전날 숙소에서 노트북까지 꺼내서 뭘 쓰고 있더라니만.

매우 우렁차고 강한 경남 사투리가 인제 천리길에 울려퍼졌다.

지나가던 다른 참가자들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지만 팀원은 개의치 않았다. “...인자 제 여정에 후원을 보내주신 '연세대 축구동아리 WTF' 회원들게 감사드리겠습니더.” 
 
나도 그닥 개의치 않고 살기 위해 숨부터 고르던 차에 영상을 찍던 팀원 입에서 익숙한 회사 선·후배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득한 선배부터 까마득한 후배 이름이 내 머리를 채웠다.

‘정신력만 있으면 되니 함께 하실?’이라며 팀을 꾸리기 위해 구애하던 필자의 과거도 다시 떠올랐다.

대부분은 단칼에 거절했지만 그래도 다들 트레일워커의 취지에 공감하며 조금씩 기부금을 십시일반했다. 올해 우리 팀은 100km 팀 기부 순위에서 10위권까지 올랐는데 모두 이들 덕분이었다.
 
[체험기] 옥스팜 100km 트레일워커 2025,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첫날 대부분 비가 내렸지만 잠깐 그치기만 하면 인제 천리길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전날 인터뷰에 응해주신 다른 팀의 말도 맴돌았다.

“액수가 중요하겠습니까, 여럿이 십시일반하는 게 선한 영향력을 더욱 퍼뜨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많이 기부했다는 게 중요한게 아니겠습니까?”

결국 필자는 우리 팀을 위해 기부한 선후배 얼굴을 떠올리자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힘든 건 변함이 없지만 필자는 다짐했다. "나를 위해 걷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선의를 빛내기 위해 이 산을 타고 있다."

우리 팀은 발걸음이 매우 늦었고 어둑해져서야 CP 3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어둡게 내려앉은 풍경도 눈에 익기 시작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잠시나마 노트북 화면에 갇혀 있던 눈을 쉬게 하기 충분했고 굽이치는 임도도 정겹게 다가왔다.

오히려 비바람이 몰아쳐 잘됐다는 긍정적 생각도 밀려들었다. 헤드랜턴을 켜고 걸었지만 비가 내려 어떤 날벌레도 날아들지 않았다. 팀원들의 말수는 줄었지만 우리를 위해 기부해 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묵묵히 걸었다.
 
[체험기] 옥스팜 100km 트레일워커 2025,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CP 4에서 한 컷. 이 사진이 우리 팀 모두가 CP에서 찍는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인제 집에 가자 시즌3’ 팀원 2명은 CP 4에서 CP 5로 가는 길에서 중도포기하기로 결정했다.

CP 5에는 25일 새벽 2시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체력이 떨어진 팀원들을 이끌고 가면 탈락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 명이라도 완주해 우리를 위해 성원을 보내준 사람을 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극적으로 남은 팀원 2명은 25일 새벽 1시57분경 CP 5에 도착했다. 다만 이들도 CP 5에서 CP 6으로 가는 도중 기권했다.

결국 올해 우리 팀은 아무도 완주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중도 포기 이후 이동하면서 옥스팜 관계자들로부터 올해는 초반 곰배령 코스가 난코스이기도 하고 대회 시작부터 비가 내려 지난해보다 기권하는 참가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말을 들었다.

중도 포기자에는 옥스팜 트레일워커 경험이 3~4년차인 참가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옥스팜 관계자들의 말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힘들었구나"라는 잠시 마음에 위안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위안도 잠시뿐이었고 반성이 이내 찾아왔다.
 
[체험기] 옥스팜 100km 트레일워커 2025,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완주 메달은 솔직히 언제 봐도 예쁘다. 내년에는 완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비즈니스포스트>

포기에 모두 자책하지 말자. 우리 모두 충분히 고생했고 스스로 고된 길을 걸어보기로 한 도전자로 남아보자 말하고 싶다.

저마다의 지인의 성원을 받고 출전해 그들 모두와 함께 걸었다. 필자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인지 다시 내년 행사 참여에 대한 의지가 속에서 피어오른다. 

그리고 필자의 팀 참가 홍보 문구는 내년에 다음과 같이 바뀔 것 같다. “체력? 정신력? 다 필요없어요. 누군가를 위해 도전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돼.”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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