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앞뒤가 꽉 막혀있는 처지다. 6월 지방선거 전망이 가뜩이나 흐린데 중진을 차출해 인물전을 펼쳐보려던 계획이 ‘박심 논란’으로 흔들리고 있다. 선거 전인 5월에 임기가 끝나는 만큼 선거를 위해 전당대회를 8월로 늦춰보려고 하지만 ‘비주류’들의 반대가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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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4일 당 지도부를 대신해 중진 차출론 및 박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새누리당은 정치 변화를 선도했고 그 변화의 핵심에는 사람이 있었다”며 “당 지도부의 새 인물 영입이 바로 공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무마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중진차출 등이 불가피함을 내비쳤다. 그는 “경쟁력 있는 당 내외 인사를 고루 참여시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하고, 당선시키려고 당 지도부는 노력한다”며 “이를 놓고 당내 후보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거나, 정치적으로 친박이니 비박이니 다투는 것은 당내 후보 자신이나 당의 선거 승리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또 “천하의 인재들이 당에 와서 공정한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정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말로만 떠드는 새 정치나 혁신보다 좋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중진 차출론’과 ‘박심 논란’을 놓고 비주류뿐만 아니라 친박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황 대표는 13일 ‘박심 논란’과 ‘중진차출론’과 관련해 “모든 것은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황 대표와 당 지도부는 이번 지방선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중진들을 내세워 ‘인물 선거’를 펼쳐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의 김황식 전 총리를 비롯해 경기의 남경필(5선), 충청의 이인제(6선) 이완구(3선), 제주의 원희룡(3선) 등을 차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출마를 고사하고 있다. 이인제 의원은 지난 1월 19일 “지방선거 출마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일축했다. 이완구 의원도 원내대표 경쟁 합류로 생각을 굳혔다. 남경필 의원은 지난 12일 최고회의가 끝난 뒤 “당 지도부의 요청 때문에 도지사 불출마 선언을 안 하는 것이지 내 선택은 원내대표”라고 못을 박았다. 원희룡 전 의원은 제주지사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당이 나를 뒷받침해준다면 고향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원칙론에 머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박심 논란’이 일었다.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서병수 의원은 지난 1월 23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작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산은 중요한 곳이니 하셔야지요’라고 말하셨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심’을 팔지 말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어 당내 친박계가 김황식 전 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밀고 있다는 말이 돌면서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정몽준 의원과 이혜훈 최고위원이 반발하는 등 ‘박심 논란’은 확산됐다.
급기야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이 지난 12일 최고회의에서 “이런 식으로 누구는 박심이다, 누구는 뭐다 나오면 중요한 시기에 당에 도움이 안 되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된다”며 수습에 나섰다. 서 의원의 말은 ‘지방선거를 위해 자제하자’며 집단속을 강조한 것이지만, 황 대표 등 지도부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황 대표 등이 차출론을 얘기하면서 해당 중진들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박심’을 내세우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원희룡 전 의원이 최근 “불출마 시에는 두고보라는 강요가 있다”고 지도부를 향해 불만을 터뜨린 것도 이런 분석을 내놓게 만드는 대목이다.
황 대표를 괴롭히는 새누리당의 갈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당대회 개최 시기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도 황 대표에게 큰 부담이다. 새누리당은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기를 놓고 논의했으나 격론만 벌였을 뿐 결론을 못냈다.
황 대표 등 지도부는 6월 지방선거와 7월 보궐선거를 치른 뒤 8월 전당대회를 열자고 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오는 5월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하지만 5월 15일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등 일정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내 선거 과정에서 갈등 양상이 부각되면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야권이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드러난 당 내부의 문제점을 공격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이 등 비주류들은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5월에 예정대로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의원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 연기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일부 당 지도부 본인의 정치적 진로와 정치적 활동 기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당대회를 연기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황 대표 고민의 뿌리는 지방선거 결과를 결코 낙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은 지지율이 높지만 지역별로 보면 밀리고 있다. 핵심지역인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민주당 소속 현역 단체장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새누리당도 인정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 선거에서 본전도 못하고 패배할 경우 향후 국정운영의 키를 잡기란 쉽지 않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지난 3일 “수도권은 상징성이 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지역”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 악재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서민들이 피부에 느끼는 경제가 좋지 않다. 전국 아파트 전세 값이 지난해 6.9%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전세난에 신음하고 있다. 식품업체들이 일제히 식료품 가격을 올리는 등 물가도 들썩거린다.
수도권 선거를 좌우할 봉급생활자들의 여론도 걱정이다. 3월에 연말정산 환급이 이뤄질 예정인데, 개정 세법에 따라 환급금이 크게 줄어들거나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당연히 선거를 코앞에 두고 봉급생활자들의 분노는 커지게 된다. 여당으로선 부담을 느낄만하다. 황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경제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며 “경제민주화를 중단 없이 실천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걱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