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올해 연말 사장단 인사에 숨은 키워드는 뭘까?
최태원 회장의 고려대 사랑이다. SK그룹은 재계에서 유독 고려대 출신이 강세를 보였는데 올해 인사에서도 큰 폭의 세대교체에도 이런 점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21일 실시된 인사에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신임 의장을 맡게 된 조대식 SK사장은 1960년 생으로 고려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최 회장과 동년배이자 대학 동문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조 의장은 대학 뿐 아니라 최 회장과 초등학교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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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조 의장은 삼성물산에서 근무하다 2007년부터 SK그룹으로 옮겨 지주회사 SK 사장까지 승진가도를 달렸다. 최 회장이 구속수감 등으로 부재했던 약 3년간의 공백을 메우며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어왔던 김창근 전 의장보다 연배가 10년 아래다. 김 전 의장은 연세대 출신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고려대 출신인 탓인지 과거에도 고려대 출신들이 최고경영진에 다수 포진해 있었다. 최 회장은 고려대 물리학과 79학번으로 1983년 졸업했다.
최 회장과 비슷한 시기 고려대를 다닌 오너 경영인 가운데 이웅열 코오롱 회장(75학번), 정몽진 KCC 회장(79학번),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80학번), 정몽익 KCC 사장(80학번) 등이 있다. 최 회장은 이웅열 회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월 한 매체가 조사한 30대그룹 CEO 400명의 출신 대학과 전공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SK그룹에서 계열사 대표이사 48명 중 16명이 고려대 출신이었는데 총수와 CEO가 동문인 비율이 3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려대 경영학과 인맥이 두드러졌다.
당시 직함 기준으로 SK그룹에서 박정호 SK사장, 유정준 SKE&S 사장, 하창현 위례에너지서비스 대표, 장석수 제주유나이티드FC, 조기행 SK건설 사장,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 이완재 SKC 사장, 한병로 SK케미칼 부사장, 김정근 SK 가스 사장이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으며 대부분이 50대 중반이다.
이번 인사에서 박정호 사장은 SK사장에서 SK텔레콤의 새 수장에 올랐다. 통신사업이 SK그룹 삼각편대의한 축인 점을 감안하면 지주사 사장에서 또 다시 중책을 맡게 된 셈이다.
박 사장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 사이인 유정준 SKE&S 사장은 4년 임기를 다 채웠지만 유임됐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들이 대거 물갈이 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최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짐작하게 한다. 유 사장은 LG건설에 있다 SK종합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최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물로 알려졌다.
조기행 사장도 이번에 SK건설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국내 대기업 산하 건설업계 전문경영인으로 처음으로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는 점에서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밖에 김준호 사장은 그룹의 주력인 SK하이닉스 안살림을 도맡은 경영지원부문 사장에 유임됐다. 김 사장은 고려대 법학과 출신으로 최 회장과 같은 신일고를 나왔다.
김 사장은 최 회장의 고등학교와 대학 선배이자 사법연수원 14기로 법무부 부장검사 출신이란 점에서 역할에 실린 무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SK그룹이 분식회계와 소버린 사태를 겪으면서 경영권이 위협받던 2004년 지주사 SK에 사장 직속으로 윤리경영실이 설치되면서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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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신임 의장. |
이번에 SK텔레콤 서비스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인찬 브로드밴드 사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SK가스 글로벌사업부문장 사장에 선임된 이제훈 사장은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지만 고려대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SK브로드밴드 사장에 오른 이형희 SK텔레콤 총괄사장도 신일고를 나와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SK그룹은 이전에도 고려대 학맥의 약진이 두드러진 탓에 SK의 약자가 서울대와 고려대를 딴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인사에서도 최 회장의 모교 출신 사랑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는 최 회장의 개인적 성향이나 선대부터 내려온 SK그룹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최종현 창업주 시절부터 SK그룹은 전문경영진의 성과나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주는 분위기”라며 “최태원 회장이 모교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특정학맥 위주의 인사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성과주의에 연연하지 않고 신의를 중시한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