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기자 taeng@businesspost.co.kr2025-04-22 15: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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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들로 인해 달러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고, 엔화 가치는 급격히 오르고 있다.
이에 투자업계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 달러화가 추락하고 엔화가 오르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가 점차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일본 금리가 낮을 때 엔화를 빌려 미국 등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이다. 이때 엔과 달러 두 통화의 가치가 역전되면 손실을 피하기 위해 엔화 청산 압력이 높아진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달러화는 9.6% 급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달러화 가치 하락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1986년보다 더 심한 상황이다. 같은 기간(연초~4월21일) 기준으로 1986년(-8.9%)보다도 하락폭이 크다.
1986년은 직전 년도 하반기 '플라자 합의'로 달러가 급락하던 시기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G5) 재무장관은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외환시장 개입을 합의했다. 미국 달러를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에 대해 절하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달러화 급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 일으킨 글로벌 관세 분쟁 및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후 글로벌 금융 생태계를 지탱해 오던 근간 체계를 트럼프 대통령이 뒤흔들자 달러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 인물 가운데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축적하고, 이는 자산의 가격 거품으로 이어져 미국 산업을 저해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스티븐 미란 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도 지난해 11월 미국 정부가 외국인들의 미 국채 매수에 대해 일방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국채 수요를 떨어뜨려 달러화 가치를 낮추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미국 정부 스스로 달러화 약세를 선호하는 가운데 향후 달러화 하락이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미 글로벌 국가들의 달러 선호도가 지속적으로 약해져 오던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들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국가들의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은 2001년 58%에서 현재 73%까지 내렸다. 특히 2017년 1분기부터 2024년 4분기까지는 약 6.5%포인트 하락하면서 가파르게 줄었는데, 같은 기간 파운드·유로·위안·엔은 비중이 모두 증가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가치의 빠른 반등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규제가 분위기 전환을 막기 때문”이라 말했다.
달러화가 흔들리는 반면 엔화의 가치는 큰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연초 150엔 후반대에서 현재 140엔까지 내렸다. 특히 전날까지 10거래일 동안은 연속 하락마감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결과 지난해 8월 초에 글로벌 증시가 목도했던 악몽을 재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난해 8월5일 코스피가 급락하면서 '검은 월요일'로 불리게 됐다.
지난해 8월5일 하루 동안 코스피는 8.77% 급락했다. 이에 앞서 나스닥은 8월1일(-2.30%), 8월2일(-2.43%), 8월5일(-3.43%) 크게 내렸으며 다른 증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달러 가치가 내리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매물이 쏟아져 나왔고,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타격을 입은 것이다.
제반 비용을 제외한 채 엔/달러 환율이 1달러 당 100엔이라고 가정하고 예를 들면, 저금리인 일본에서 0% 수준 금리로 1만 엔을 대출받아 100달러로 환전한다. 이를 5% 금리 미국 채권에 투자해 105달러로 불린 뒤 다시 1만500엔으로 환전하면 500엔의 수익을 거둔다.
만약 엔화가 약세를 보여 달러당 120엔으로 올랐을 경우 수익은 2600엔으로 불어난다. 반면 엔화가 강세를 보여 달러당 80엔으로 내리면 오히려 1600엔의 손실이 발생하는 식이다. 본질적으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수록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력이 강해지는 구조이다.
그런데 앞으로 엔화의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엔화 선물에 대한 투기적 순매수 계약 건수는 4월4일 약 12만 건에서 11일 15만 건, 18일 17만 건으로 계속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투자자들이 장기적 엔화 강세에 베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트럼프발 경제 불확실성으로 위태로운 주식시장을 엔 캐리 청산이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달러화 급락과 엔화 초강세 현상은 일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어 "지난해 8월 주식 부문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많이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이후에 미국 주가가 또 올랐으므로 또다시 엔 캐리가 쌓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홍철 DB증권 연구원도 이달 7일 보고서에서 “금리와 함께 니케이 지수와 엔/달러 환율의 변동성도 제법 큰데 이는 15년 간 축적된 엔 캐리 자금들의 포지션 변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렇다면 지난해 7~8월의 청산이 가져온 혼란과는 차원이 다른 중장기적인 자산 배분의 변화가 촉발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