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모범생'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자이 진정한 ESG 리더가 되기 위한 마지막 과제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가 꼽힌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2021년, 2023년, 2024년. 한국ESG기준원이 매년 실시하는 ESG 평가에서 2021년 이후 현대백화점 그룹의 모든 상장사들이 A등급 이상을 받은 연도다.
2022년에 한섬과 지누스가 B+ 등급을 받으면서 아쉽게도 4년 연속 모든 상장사의 A등급 이상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이 재계에서 ‘ESG 모범생’으로 손꼽히는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결과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그동안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운영을 강화하고, 사외이사 중심의 견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에 힘써왔다.
그러나 ‘ESG 모범생’
정지선 회장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가 있다. 바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다.
◆ ESG 모범생 정지선의 남은 과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겸임
2024년 현대백화점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2023년 회계 기간에서 지배구조 핵심지표 가운데 △현금 배당관련 예측 가능성 제공 △집중투표제 채택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지 여부 등 세 가지의 항목을 미준수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금 배당 예측 가능성은 2024년 주주총회를 통해 해결됐다. 현대백화점은 2024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투자자가 주주총회에서 확정된 배당금을 확인 후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배당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집중투표제는 이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대표적 제도다. 하지만 투기자본에 의한 주주권 남용이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기 때문에 다른 제도를 통해 이사회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재계에 퍼져 있다.
하지만 대표이사의 이사회 의장 겸임 문제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기업 지배구조에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는 것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기 위한 핵심 원칙으로 꼽힌다.
이사회는 본래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감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경우 이사회가 경영진을 독립적으로 견제하기 어려워지는 구조적 한계가 생긴다.
현대백화점뿐 아니라 현대지에프홀딩스, 현대홈쇼핑, 한섬, 현대리바트, 지누스, 현대퓨처넷, 현대이지웰, 현대에버다임, 현대바이오랜드 등 현대백화점그룹의 10개 상장사 가운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분리돼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현대백화점그룹이 ESG 평가에서 줄곧 높은 점수를 받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구조 개선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이사회 구조 개편, 글로벌 기업들의 표준이 되고 있다
삼일PwC 거버넌스센터는 2024 이사회 트렌드 레포트에서 "국내외 다양한 지배구조 원칙과 규범은 이사회 구성의 독립성과 감독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며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한다면 이사회의 독립적인 경영 감독 기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는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의 기업 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마켓인텔리전스의 2024년 상반기 조사에 따르면 S&P500에 편입돼있는 기업의 약 58.4%, 러셀3000에 포함된 기업의 약 63.7%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분리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한국 상장사는 전체의 38%에 불과하지만,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 역시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SK그룹이다.
SK그룹은 20개 상장사 중 15곳(75%)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세우고 있는 거버넌스 개선 수칙에 따라 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상장사는 전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임직원들이 2020년 1월2일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서 연탄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
◆ 현대백화점그룹이 ‘거버넌스 리더’로 완성되기 위한 마지막 퍼즐
현대백화점그룹은 ESG 경영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고, 지배구조 개선에서도 재계에서 손꼽히게 높은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지선 회장이 글로벌 거버넌스 트렌드에 맞춰 이사회 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은 대표이사 중심의 이사회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지 않는 문제는 우리나라 재계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라며 “사외이사를 통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를 우리나라 기업들이 빠르게 쫓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들의 이사회는 대부분 사외이사가 과반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외이사 중심의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라며 “또한 모든 이사가 동등한 이사회 소집, 의안 제안, 경영정보 접근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