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오른쪽)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 이 2023년 3월28일 경기 성남시 분당 두산타워에서 열린 '두산 헤리티지 1896' 개관식에서 신입사원들과 함께 개관을 기념해 리본를 자르고 있다. <두산> |
[씨저널] "모든 임직원이 '현재를 단단히 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2025년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박 회장이 지난 10년간 두산그룹을 이끌면서 줄곧 추구해온 경영과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의 10년 경영은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처럼 결단으로 두산그룹을 탈바꿈해 일으켰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박 부회장은 1996년 두산그룹 형제경영 체제 이후 최장기 회장 재임기록을 다시 쓰면서 미래를 위해 기존 소형모듈원전(SMR)과 수소, 로봇과 인공지능을 새로운 축으로 세우고 있다.
◆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반도체 및 첨단소재 3대 사업축에서 미래 찾다
박정원 회장은 최근 들어 인공지능 성장세에 올라타기 위해 스마트머신과 반도체 및 첨단소재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두산테스나의 반도체 후공정 사업 및 두산의 전자BG의 반도체 소재부품 사업과 로봇을 비롯한 스마트머신 사업은 인공지능과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은 이런 사업 연계성을 눈여겨보고 사업 사이 시너지 창출을 강조해왔다.
그는 세계 전자박람회 CES2024에서 "두산은 협동로봇, 건설기계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적용한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고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인공지능 기술과 우리 비즈니스의 연계점을 살피고 지속적으로 사업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인공지능과 반도체 사업에 힘을 주는 까닭은 과거 가스터빈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을 딛고 역량을 키워 성공한 경험이 밑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13년 무렵 대형 가스터빈 개발에 착수할 때만 해도 독자개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시선을 받았다.
그럼에도
박정원 회장과 두산그룹은 '뚝심'있게 지속적으로 개발을 진행해 2019년 세계에서 5번째 270MW(메가와트)급 발전용 대형가스터빈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성공을 이뤘다.
박 회장의 이런 기술개발 노력은 두산그룹의 전통적 에너지 사업에 더해 로봇, 첨단소재라는 3대 사업 포트폴리오 구상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박 회장의 이런 사업재편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두산그룹은 2024년 7월 3대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흡수합병하고 상장폐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주권익 침해 논란과 금융감독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에 따라 무산됐다.
그 뒤 같은해 10월 두산법캣을 상장폐지없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이 또한 철회됐다.
예상치 못했던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령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사회구조 재편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났기 때문이다.
◆ 유동성 위기와 뼈를 깎는 구조조정 성공
박정원 회장이 품고 있는 사업구조 재편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 "우선은 안정을 기조로, 기회가 오면 기민하게 대응하자. 당장 시장 여건이 어려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며 "회사나 부문 간 경계를 넘는 협업을 위해서는 활발한 소통과 더불어 새로운 시도가 적극 장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런 의지는 두산그룹이 2019년 직면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동력이기도 했다.
2019년 무렵 두산건설의 지속적 적자는 두산그룹 전체의 재무위험을 가중시켰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2020년 3월 두산그룹은 채권단에게 자구계획을 제출하고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두산그룹은 당시 두산타워, 클럽모우CC, 두산솔루스, 모토롤BD 등 알짜 재산을 매물로 내놓은데 이어 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두산인프라코어까지 매각을 추진했다.
일각에서는 "두산이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라는 우려마저 나왔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흔들림 없이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갔다.
그는 당시 두산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두산중공업의 위기에 따른 사회적 파장과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두산은 금전적 부채를 넘어 사회적 부채를 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뼈를 깎는 쇄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노력에 힘받아 두산그룹은 2022년 2월 불과 23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조기 졸업했다. 이는 재계 역사에서 구조조정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 2013년 10월29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이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포스트 박정원으로 꼽히는 박지원과 박진원
두산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박정원 회장의 후계자가 누구일까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다음 회장 후보로는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과
박지원 두산 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이 꼽힌다.
박진원 부회장이 거론되는 이유로는 박두병 초대 회장의 3남인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으로서 형제경영 및 장자승계 전통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박진원 부회장은 1968년 태어나 두산음료의 사원으로 입사해 박용만 회장이 만든 두산그룹의 핵심 전략수립 부서 트라이씨에서 3년간 활동한 전략전문가다.
2025년 3월 기준으로 두산 지분을 3.64% 쥐고 있어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회장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두산그룹의 핵심 사업에서 벗어나 있고 2021년 수면마취제 프로포폴과 관련해 기소유예를 받았던 점은 뼈아픈 약점으로 꼽힌다.
박정원 회장의 친동생인
박지원 회장이 그룹회장 후보로 꼽히는 배경에는 핵심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그룹 내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박지원 회장은 1965년 태어나 소형모듈원전을 비롯한 차세대 사업을 안정적 궤도에 올려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로서는
박지원 회장의 두산그룹 안팎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다음 회장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럴 경우 박용곤 명예회장의 가문에서만 경영권이 계승되는 셈이어서 박용성 회장 일가가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 '형제의 난' 악몽
두산그룹의 형제경영은 그동안 많은 진통을 겪으며 정착됐다.
형제 간의 경영권 갈등은 박용곤 명예회장과 박용오 전 회장 간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1996년, 박용곤 명예회장은 동생 박용오 전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었으나, 2005년에는 박용오 전 회장에게 “취임 10년이 됐으니 2005년 말에 은퇴하라”며 경영권을 내려놓을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은 반발하며 회장직을 물려받을 두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회장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투서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검찰조사 결과 비리는 사실로 드러났고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이후 특별 사면을 통해 재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형제 경영의 원칙을 깨려고 시도한 박용오 회장은 두산 오너일가에서 완전히 제명돼 쫓겨나게 된다.
2009년 4남인 박용현 회장, 2012년에는 5남인 박용만 회장이 회장직을 이어받았고, 2016년에는
박정원 회장이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두산그룹의 형제경영은 안정된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현재 두산그룹은 구조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아울러 현재로서는 큰 분쟁의 조짐은 없다.
박정원 회장이 아직 비교적 젊고, 장기적으로 회장직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박진원 부회장이
박지원 회장의 승계를 인정하거나 형제 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박진원 부회장이 일단 회장직을 맡고 후에
박지원 회장에게 넘기는 시나리오도 고려해볼 만하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