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우 NH금융지주 회장이 2월4일 서울 용산구 고객행복센터에서 고객 상담을 체험하고 있다. < NH금융지주 > |
[씨저널]
이찬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농협중앙회와 어떤 관계를 구축하게 될까?
찬 바람이 불었던 2025년 2월 농협그룹에서는 독특한 장면이 연출됐다.
금융업계에서 재직한 경험이 없는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NH투자증권을 찾아 현장 경영에 나서며 금융 계열사를 향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강 회장은 조합장을 지내며 ‘첫눈에 반한 딸기’ 수출을 바탕으로 높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지난해에는 17년 만에 직선제를 통해 농업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농협중앙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강 회장이 NH투자증권을 찾은 2월3일은 공교롭게도
이찬우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취임일이었다.
농협그룹 전체 매출의 75%가량을 차지하는 NH농협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선임된
이찬우 회장은 2월3일 별도의 취임식을 진행하지 않았다.
취임 다음날에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NH농협은행의 고객행복센터를 방문해 고객 상담을 체험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조용히 시작했다.
◆ ‘재도약’ 기치 내건 이찬우, 농협중앙회와 관계 설정은?
강 회장이 내부통제 강화를 기치로 삼아 금융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인
이찬우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맡게 됐다.
이 회장은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의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월4일 서울 용산구 NH농협은행 고객행복센터에서 농협금융지주의 독립성 회복 문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외부와 내부에서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며 농협의 특수성을 두둔했다.
이 회장은 “농협금융지주는 1111개 지역조합이 출자한 것으로 가급적이면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농업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중앙회와 잘 협의한다면 충분히 우려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그와 관계가 깊은 사람들을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대표로 임명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의 재도약을 추진하기 위해선 농협중앙회와 원만한 관계 설정이 필수적이다.
농협금융지주의 전체 순이익의 약 64%를 담당하는 NH농협은행을 이끄는 강태영 신임 NH농협은행 은행장이 대표적인 강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강태영 행장은 1966년생으로 경남 진주 출신이다. 경남 합천 출신인
강호동 회장과는 같은 경남 출신이다.
199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구조개혁추진단 NBD팀장, 카드마케팅부 카드상품개발팀장을 거친 뒤 농협은행으로 넘어와 인사부 인사팀장, 서울강북사업부장, 디지털전환(DT)부문장 등을 맡았다.
강태영 행장 외에도 박병희 농협생명 부사장이 대구 출신이고 송춘수 농협손해보험 부사장이 마산 출신이다. 회장이 자리를 비우면 직무대행을 맡은 전략기획부문장으로 임명된 이재호 부사장은
강호동 회장이 합천 율곡농협 조합장을 맡았던 시기에 농협은행 합천군 지부장으로 일했다.
이 회장은 1966년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재정경제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기획재정부 차관보, 경남도청 경제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을 지냈다.
이 회장은 주변 동료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온화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와의 원만한 관계 설정이 기대되는 이유다.
농협중앙회와 금융당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 속에서 이 회장이 여야 어디와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기획재정부 차관보에 선임된 뒤 2년10개월을 재직하며 기획재정부 사상 최장수 차관보로 이름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 때도 중용돼 소득주도성장 등 초기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기초를 다졌다.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동생이기도 하다.
▲ 이찬우 NH금융지주 회장이 2월25일 경기 고양시 NH인재원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NH금융지주 > |
◆ 갈등하거나 화합하거나
과거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았던 인물들은 농협중앙회와 매우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거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행보를 보였다.
농협중앙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로는
김용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꼽힌다.
김 전 회장은 내정자의 신분이던 시절부터 농협중앙회와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15년 3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농협금융지주의 경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협중앙회와 원만한 관계 유지와 협력 강화가 될 것”이라며 “농업인 지위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비전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2016년 조선업과 해운업 부실 대출 여파로 약 1조7천억 원 규모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대규모 손실처리(빅배스)를 단행하기 위해 농협중앙회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가 단행한 과감한 빅배스 덕분에 농협금융지주는 부실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빠른 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회장은 경영 위기 상황 속에서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이에 힘입어 농협금융지주 최초의 연임 회장이 되기도 했다.
현재 우리금융지주의 회장을 맡고 있는 임종룡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도 농협중앙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로 꼽힌다.
취임하자마자 농협중앙회 노조와의 갈등을 해결한 임 전 회장은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에 회의적인 조합장들을 설득하며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성공했다.
임 전 회장은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도 큰 마찰 없이 농협금융지주를 이끌었다. 당시 그는 농협에서 수십 년 일한 직원들보다도 농협만의 독특한 조직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신동규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농협중앙회와 극심한 갈등을 빚은 인물로 유명하다. 신 전 회장은 2013년 5월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농협중앙회의 극심한 간섭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신 전 회장은 “농협금융 지배구조에 문제가 많다”며 “농협금융은 제갈량을 데려와도 안 되는 조직”이라고 날선 평가를 남겼다.
이석준 전 농협농협금융지주 회장 또한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과 불편한 관계를 구축했다.
강 회장 취임 직후 NH투자증권 사장 선임을 두고 두 회장이 격돌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강 회장의 추천한 인물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맞섰다. 금융감독원이 이 전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강 회장은 체면을 구겼다.
이 전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 영입 1호 인사로 윤석열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2024년 순이익으로 2조4537억 원을 거두며 농협금융지주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강 회장과의 불편한 관계에 더해 계엄에 따른 정국 혼란이 겹치는 상황 속에서 연임을 포기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