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NH금융지주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취임 2년차를 맞이해 NH농협금융지주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측근이거나 동향 출신을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대표로 임명했다.
NH투자증권과 같은 금융계열사를 방문해 사업계획을 직접 점검하고 농업 및 농촌 지원 강화를 위한 금융 부문 수익 확대 방안도 논의했다.
강 회장의 행보는 관치금융 논란에서 벗어나 농업과 농민을 위한 농업협동조합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강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의 경영과 인사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 농협중앙회와 농금융지주의 특수한 관계
일반적으로 금융지주는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린다. 원칙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분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동일인은 금융기관의 주식을 최대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금융지주회사는 대부분 금산분리 원칙의 적용을 받고 있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상호 소유를 금지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금융 자회사를 자신의 돈주머니처럼 활용하거나 금융회사가 일반 기업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이러한 상황이지만 농협금융지주만은 동일인이 존재하는 유일한 금융지주회사로 남았다.
전국 단위 조합들의 출자금으로 설립·운영되는 비영리조직인 협동조합의 특수성 때문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가 됐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NH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보유한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동일인으로 지정해 놓은 대한민국 유일의 금융지주 ‘오너’로 남아있다.
다만 농협의 기형적인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지 조치로 신용사업(금융부문)과 경제사업(비금융부문)을 분리하는 신경분리 작업이 진행됐다.
NH농협금융지주는 2012년 신경 분리 작업을 통해 탄생했다. 신경분리의 배경에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각자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면 그것이 농민에게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2010년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신경 분리를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제대로 운영해서 수익이 많이 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농촌 지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전문화가 안 되면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농민이 침체하고 희망 없는 농촌이 된다”고 말했다.
신경 분리 이후로 농협금융지주는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기존에 진행하던 공제사업을 NH농협생명보험, NH농협손해보험 등의 자회사로 출범시키며 전문성을 강화했다. 이어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금융지주로서의 모습을 갖췄다.
신경 분리 작업조차도 농협그룹의 지배구조 자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농협금융지주 위에 농협중앙회가 있는 옥상옥 구조 아래 농협중앙회장의 농협금융지주 인사 개입 논란 등이 1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 17년 만에 직선제로 당선된 강호동, ‘농민을 위한 농협’ 잰걸음
강호동 회장은 2007년 이래 17년 만에 치러진 직선제로 당선됐다.
농협중앙회 회장은 1988년 이전까지는 대통령이 임명했다. 1962년 군사정권에서 만든 농업협동조합 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26년 동안 유지됐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1988년 12월31일 농협법이 개정되며 농협중앙회 회장을 뽑는 방식은 직선제로 바뀌었다.
이 시기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농협중앙회 회장들은 모두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처음으로 선출된 한호선 전 회장은 1994년 3월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았다. 원철희 전 회장 또한 1999년 4월 횡령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대근 전 회장은 110억 원에 이르는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5년의 실형을 살았다.
직선제로 뽑힌 회장들의 논란이 이어지자 농협중앙회장을 뽑는 방식이 간선제로 바뀌었다. 임기 또한 연임 제한이 없다가 단임 4년으로 정해졌다.
농협중앙회 회장을 뽑는 방식은 전체 조합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게 되며 2021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간선제에서 다시 직선제로 돌아가게 됐다.
17년 만에 열린 2024년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에는 현직 회장인
강호동 회장을 포함해 8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진 투표에는 1111명의 조합장이 전부 참여했다. 조합원 수가 3천 명 이상인 조합에는 2표가 주어졌기 때문에 전체 투표수는 1252표였다.
1차 투표에선
강호동 회장이 과반수에 못 미치는 607표를 얻었다. 강 회장은 이어진 2차 투표에서 전체 투표수의 62.3%인 781표를 받으며 농협중앙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강 회장은 직선제로 뽑힌 만큼 간선제 방식으로 뽑힌 전임 회장들보다 권력의 정당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 회장은 높은 정당성을 바탕으로 농민을 위한 농협을 만들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강 회장은 6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기자실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보급형 스마트팜 도입을 확대하는 한편 쌀 소비 촉진 및 유통 혁신을 통해 농업인의 소득 증진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농업 소득이 30여 년간 1천만 원 수준에서 정체돼 있고 경기 침체와 쌀·소값 하락, 기상이변 등의 영향으로 농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돈 버는 농업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12일에는 한국 농식품의 수출을 통한 농업 소득 향상을 꾀하는 한국농협수출협의회도 출범했다.
강호동 회장은 “농협의 수출 경쟁력 강화와 해외 판로 확대를 위해 한국농협수출협의회 설립하게 되었다”며 “협의회를 통해 수출 품목조합을 육성하고 효율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해 ‘돈 버는 농업’을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2월3일 2025년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NH투자증권을 방문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
◆ 갈수록 강해지는 강호동의 농금융지주 관여
강 회장은 농협의 본분이 농민의 실익 증진이라는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농협금융지주 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강 회장의 취임 직후인 2024년 3월 진행된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농협중앙회의 인사 개입 문제가 불거졌다.
강 회장은 농협중앙회 출신인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NH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추천했다. 반면 이석준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증권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선임돼야 한다며 유 전 부회장을 향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 전 부회장이 강 회장의 측근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결국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이러한 의혹을 직접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금융당국과의 갈등 속에서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증권 전문성이 있는 윤병운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 강 회장이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 것이다.
강 회장은 그 후로도 농협금융지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농협금융지주 비상임이사에 강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박흥식 광주비아농협 조합장이 추천됐다. 농협금융지주 비상임이사는 농협금융지주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참여해 경영진 선임 등의 중요 안건을 처리한다.
강 회장은 비상임이사 외에도 농협중앙회, 자회사, 농협대학교 등 중요한 자리에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임명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강 회장의 행보는 2024년 10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 회장이) 취임하며 단행한 인사 49명 중 내부 승진자는 하나도 없었다”며 “강 회장 취임 이후 농협중앙회와 계열사, 심지어 농협대에도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를 채용하면서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강 회장은 “꼭 캠프 출신이라기보다 선거 기간 저와 마음을 나눈 분들”이라며 “선거 때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분들”이라고 답변했다.
강 회장의 농협금융지주 지배력 강화 움직임은 금융 계열사 대표이사 및 주요 임원 교체 과정에서도 관측됐다.
2024년 12월 진행된 연말 인사에서 교체된 6명의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은 대부분이 강 회장의 입맛에 맞는 농협중앙회 출신이거나 동향인 영남 출신이었다.
강태영 신임 농협은행장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강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박병희 농협생명 부사장과 송춘수 농협손해보험 부사장도 강 회장과 같은 영남 출신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부재 때 대행을 맡는 농협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장 자리도 강 회장의 최측근이 맡았다.
이재호 전략기획부문장 부사장은 1993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유럽연합(EU)사무소장, 경영전략팀장 등을 맡았다. 강 회장이 합천 율곡농협 조합장을 지내던 시절에는 농협은행 합천군 지부장을 역임했다는 인연이 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