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은행권이 책무구조도를 본격 도입한 지 3개월 가까이 지나면서 내부통제 관련 긴장감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금융사고가 터진다면 어느 곳이든 '책무구조도 적용 1호' 금융사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 국내 은행권이 올해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내부통제 강화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죄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금융당국이 지속해서 내부통제 강화를 압박하는 가운데 특히 4대 금융지주는 3월 말 주총을 앞두고 제도를 정비하며 금융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도 은행권의 금융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책무구조도가 적용되는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 적발 시점이 아닌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 등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했지만 두 곳 모두 지난해 일어난 사고가 올해 알려지면서 책무구조도 적용을 피해갔다.
하지만 이제는 책무구조도 적용 1호 금융사가 가려질 시간이 진짜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은행은 지난주 직원 횡령에 따른 17억 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일어났다고 공시했는데 사고 발생 기간은 2021년 말부터 지난해 7월까지다. 기업은행이 1월 자체 감사를 통해 잡아낸 배임 혐의 관련 금융사고는 2022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발생했다.
이번에 적발된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의 금융사고가 각각 6개월과 2개월만 더 이어졌더라도 책무구조 적용을 받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은 책무구조도 적용 1호 금융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책무구조도 적용 1호가 된다면 본보기로 금융당국의 더욱 강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들의 책임을 세부업무까지 구체적으로 사전에 명시한 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는 제도로 지난해 하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부터 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와 은행에 선제적으로 도입됐다.
임원을 직접 제재하고 CEO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도 불린다.
금융당국은 지속해서 은행권을 향해 내부통제 강화를 압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1일 은행과 은행지주 임직원을 상대로 진행한 ‘2025년도 은행 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금융사고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당시 인사말에서 “내부통제의 질적 제고를 위해 책무구조도, 내부통제 혁신방안의 안착을 지도하고 미흡사항은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책무구조도 적용 1호의 불명예를 안는 금융지주나 은행은 이미지가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금융사고의 경중을 떠나 책무구조도 적용 1호라는 낙인이 찍히면 향후 금융권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 등에서 지속해서 언급되며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질 수 있는 셈이다.
이에 4대 금융을 비롯한 은행권은 올해 들어 더욱 조심하며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4대 금융은 내부통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이사회 내 내부통제위원회를 새로 만드는 등 3월 말 주총에서 4곳 모두 내부통제 관련 이슈를 주요 안건으로 올린다.
지주 회장들도 직접 나서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 임종룡 회장이 12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내부통제 강화를 주제로 '그룹CEO 타운홀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금융> |
특히 지난해 내부통제 문제로 곤혹을 치렀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금융이 전임 회장 부당대출 연루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책무구조도 적용 1호 금융사라는 불명예까지 안는다면 그동안 신뢰 회복의 노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임 회장은 12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진행한 ‘그룹CEO 타운홀미팅’에서 “윤리 의식이 0이 되면 금융사의 신뢰도 0이 된다”며 그룹사 임원들에게 윤리 의식과 내부통제를 앞장 서 챙길 것을 당부했다.
임 회장은 2월 말 그룹사 현장 내부통제 전담인력을 한자리에 모아 ‘내부통제 현장점검회의’를 열고 내부통제 강화를 다짐하기도 했다.
4대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사고를 보면 아무리 대비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항상 터져나왔다”며 “올해는 책무구조도까지 도입된 상황이라 CEO부터 임원진까지 더욱 긴장된 상태로 내부통제 사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