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냉장고들이 버려져 숲속에 방치돼 있다. < Flickr >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수소불화탄소 냉매 가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 효과를 내는 물질이다.
기후솔루션은 13일 발간한 '사람은 식히고 지구는 달군다? 인공냉매 수소불화탄소(HFCs)가 불러온 기후위기의 역설'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수소불화탄소는 냉장고, 에어컨,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등에 들어가는 냉매에 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배출됐을 때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가 최대 1만2400배 강하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냉각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매년 10~15%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는 수소불화탄소 등 냉매가 주입된 냉매공조기기 사용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세계 항공 산업 분야의 연간 배출량보다 약 두 배 많다.
그럼에도 수소불화탄소는 오랫동안 기후위기 대응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는데 오존층 파괴지수가 낮아 기존 냉매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물질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 알려지면서 2016년에 수소불화탄소 감축을 목적으로 하는 '키갈리 개정서'가 채택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감축 노력이 시작됐다.
키갈리 개정서를 채택한 한국도 2045년까지 수소불화탄소 생산 및 소비량을 2020~2022년 평균 대비 80% 감축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 5위 냉동공조기기 생산국이라 글로벌 수소불화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주요국들과 비교해 매우 늦다는 점이다.
한국은 2023년에야 키갈리 개정서를 비준했다. 비준 이전인 2022년에 한국 수소불화탄소 배출량은 2018년과 비교해 40% 가까이 증가했다.
수소불화탄소 배출량 집계 인프라도 부족해 2021년에 누락된 수소불화탄소 배출량 2000만 톤이 지난해 9월에 공식 집계되는 일도 발생했다. 누락 집계가 반영되면서 2021년 수소불화탄소 배출량은 기존 4배로 증가해 농축수산업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기후솔루션은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냉매의 전주기에 걸쳐 수소불화탄소 배출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냉매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행 '오존층 보호법'에는 수소불화탄소 관련 폐기 등을 규제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또 냉매 사용량을 신고하거나 회수해 처리 및 보고하는 등 사항도 제품별로 각각 다른 법이 적용돼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기후솔루션은 이 때문에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회수 및 폐기가 이뤄지는 냉매 비율은 전체 유통량의 약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범철 기후솔루션 메탄·수소불화탄소팀 연구원은 "지구온난화로 냉장고와 에어컨 등 냉동공조기기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이는 다시 수소불화탄소 배출로 이어져 기후위기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이같은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의 적극적 정책 대응을 통해 냉동공조업계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소불화탄소 감축 및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