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기자 heydayk@businesspost.co.kr2025-03-13 14: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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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양곤 HLB그룹 회장(사진)이 10곳에 이르는 관계사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임원 과다 겸직에 따른 충실의무 저해 우려가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터>
[비즈니스포스트] 진양곤 HLB그룹 회장이 올해도 그룹의 바이오생태계 구축을 위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진양곤 회장이 강조해 온 HLB그룹의 신약개발 시스템 ‘HBS’는 연구개발, 생산, 규제 대응, 인허가, 마케팅 등 각 관계사의 핵심역량을 통합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잇따른 인수합병으로 10곳에 이르는 관계사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임원 과다 겸직에 따른 충실의무 저해 우려도 나온다.
13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진 회장은 펩타이드 기반 바이오기업 애니젠의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될 예정이다. 이로써 진 회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계열사는 10개로 늘어났다.
진 회장은 현재 HLB그룹 상장사 11곳 가운데 HLB테라퓨틱스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HLB, HLB생명과학, HLB제약, HLB글로벌, HLB사이언스, HLB바이오스텝, HLB파나진, HLB이노베이션, HLB제넥스에 이어 애니젠까지 추가되는 것이다.
HLB그룹은 자금을 동원해 올 새로운 기업을 인수한 뒤, 해당 기업의 이사회에 진 회장을 비롯한 HLB측 주요 인사를 채우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HLB제넥스(옛 제노포커스)도 2024년 10월 HLB그룹에 인수된 뒤 같은 해 12월 진 회장을 비롯해 4명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애니젠도 HLB제넥스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진 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만큼 신규 인수 기업의 초기 이사회 멤버로 회사 방향성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려 10곳의 계열사 이사회에 실질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대기업 총수들의 과다겸직 사례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지주를 포함해 롯데케미칼, 롯데웰푸드 등 여러 개 계열사 사내이사를 겸직하면서 과다겸직 논란이 일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도 4곳의 대표이사 겸직으로 이사회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지 우려를 받기도 했다.
진 회장은 아직까지는 8곳 계열사 이사회를 90% 이상의 참석률을 유지하고 있다. 진 회장의 이사회 참석률을 살펴보면 HLB는 100%(2024년 3분기 기준), HLB파나진 100%(2024년 반기 기준), HLB바이오스텝 100%(2024년 반기), HLB글로벌 95%(2024년 3분기 기준), HLB이노베이션 95%(2024년 연간), HLB생명과학 93%(2024년 3분기 기준), HLB제약 90%(2024년 3분기 기준), HLB사이언스는 67%(2023년 연간)이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HLB제넥스와 애니젠 이사회도 챙겨야 하는데다 추가 인수 가능성도 남아 있어, 이사회 참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진 회장은 무려 10곳의 계열사 이사회에 몸담고 있어 이사회 참여 실요성 논의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진 회장의 신규 계열사 사내이사 진입이 자금 조달 목적이라는 꼬리표도 떼기 어렵다. HLB그룹은 신규 인수 과정에서 계열사 다수를 동원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이번 애니젠 인수에는 HLB그룹사 7곳(HLB, HLB제넥스, HLB생명과학, HLB바이오스텝, HLB파나진, HLB인베스트먼트, 코아스)이 동원됐다.
특히 HLB제넥스는 HLB그룹이 인수한 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애니젠 인수에 동원됐다. HLB제넥스 인수에도 그룹사 7곳이 동원됐다. 진 회장이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는 목적이 또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HLB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거듭하며 인수 자금을 손쉽게 조달해왔다. HLB 측은 그룹 내에서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지만, 반복된 유상증자로 인해 결과적으로 진 회장의 주머니만 채우게 된 셈이다.
물론 꼭 필요한 회사들을 인수했다고 하지만 리보세라닙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해 지주사격인 HLB 자체적으로도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부실기업만 인수한다는 우려를 살 수 있다. 실제로 HLB가 인수한 회사들은 대부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연결기준으로 상장 그룹사들 실적을 살펴보면 HLB생명과학 영업손실 244억 원, HLB글로벌 영업손실 36억 원, HLB바이오스텝 영업손실 129억 원, HLB파나진 영업손실 13억 원, HLB이노베이션 영업손실 118억 원이었다. 2024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 HLB제넥스는 영업손실 4억 원, 애니젠은 영업손실 41억 원을 냈다.
HLB는 2014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3억6천만 원을 낸 이후 11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연결기준으로는 영업손실 1188억 원을 내면서 2023년과 비교해 62억 원 가량 적자 폭을 줄였다.
적자가 지속되면서 HLB 주가도 하락하고 있다. 1년 전인 2024년 3월14일 HLB 주가는 9만7천 원이었지만 12일 종가 기준 HLB 주가는 7만8500원으로 19% 하락했다. 시가총액은 12조6887억 원에서 10조3139억 원으로 2조3748억 원이 증발했다.
또한 진 회장이 설계한 HLB그룹 신약개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HLB의 핵심 파이프라인(후보물질)들이 임상에 성공해 상업화까지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 HLB그룹 신약개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은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진 회장이 리보세라닙을 라이선스아웃(기술수출)하지 않고 독자개발을 강조한 이유도 성과를 오롯이 HLB그룹사들이 가져가기 위해서인데 상업화가 계속 지연되면서 그룹 전반에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리보세라닙은 20일 안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허가 여부를 통보받는다. HLB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신약승인과 관련해 미국 FDA 통보가 오면 즉시 유튜브를 통해 공지하겠다”며 “악성 루머에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HLB 관계자는 “진양곤 회장은 주요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이사회를 매우 중요시 여겨 모든 상장사 정기 이사회는 직접 참석하고 있으며 비정기 임시이사회도 직접 또는 온라인 형태로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경영자가 주요 상장사의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은 모든 의사결정의 최종 책임이 의장에게 있음을 외부에 알리고 내부 경영자들에게도 경각심을 주어 충실한 경영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