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10월19일 기흥캠퍼스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
[씨저널]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기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돌파할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들이 나온다. 그 많은 인재들이 모였다는 삼성전자를 놓고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인재에 대한 투자를 강조해왔다.
이 회장은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고 양성하겠다"고 능력 중심의 인사방식을 2022년 10월 회장 취임사를 대신해 사내게시판에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세바스찬 승(승현준) 삼성전자 DX부문 삼성리서치 글로벌R&D협력담당 사장과 같은 핵심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삼성전자가 그동안 구축해온 인재 경영시스템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에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로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렇다 보니 이 선대회장 시대에는 전문경영인들은 세계를 누비면서 인재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재용 회장도 "인재와 기술 중시" 경영을 강조하며 기술 인재를 중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회장 취임과 함께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의지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기에 몰린 것은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와 함께 경영의 중심이 기술에서 재무로 옮겨간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수치 중심의 경영 방식이 비용 통제와 단기 성과주의로 나타나면서 중장기적 기술 투자에 힘을 줘야 한다는 기술 인재들의 목소리가 위축됐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프로젝트에서 뒤처지는 것이나 애플에 통신모뎀 납품 시도를 경쟁사라는 이유로 불발시킨 것 등 삼성전자가 도약의 기회를 놓친 사례들을 놓고 아쉬움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런 현상은 경직된 조직문화와 소통 부재를 낳았고
이재용 회장이 '기술초격차'를 강조하지만 기술 인재들의 이탈이 잦아지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기술 인재를 찾고 신뢰하고 성과를 낼 때까지 인내했다.
그는 회장으로서 제일 힘든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키우고 쓰고 평가하는 일이라며 "한 번 일을 맡겼으면 거기에 맞는 권한을 주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 잘하는 사람'만을 중시하지 않고 평소 동료를 많이 도와주거나 뒤에서 숨은 공신 역할을 한 사람도 마땅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2013년 10월 열린 '신경영 20주년' 기념 만찬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삼성전자> |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이건희 선대회장 방식의 인재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권 상임고문은 기술 개발자 출신 최고경영자(CEO)로서 "최장수"와 "최고령" 최고경영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1985년 삼성반도체연구소에 입사한 그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삼성의 반도체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이재용 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사법 리스크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만큼 변화의 최일선에 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매체 파이낸셜 타임즈(FT)과 인터뷰에서 “
이재용 회장의 신중한 경영 스타일이 오히려 삼성의 위기를 불러왔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과감한 투자와 의사 결정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대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에 안주하면서 SK하이닉스에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선점당하는 등 경쟁에서 뒤쳐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