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금융업계에서는 김병주 회장의 지난 기간 행보를 봤을 때 이번 국회의 출석 요구 역시 응할 가능성이 낮다고 바라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물론 금융당국과 세무당국의 전방위 압박이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김 회장이 국회에 깜짝 참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회장이 이번 사태를 무난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국내 사업에서 신뢰를 크게 잃을 수 있는 만큼 공개석상에 나와 홈플러스 협력업체와 상생 등을 직접 약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병주 회장이 홈플러스 인수와 관련해 국회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2015년 9월 이후 약 10년 만이다.
2015년은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해다.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MBK의 홈플러스 인수 뒤 직원 고용승계 문제, 협력업체와 관계, 홈플러스 재매각을 위한 구조조정 등에 질의할 계획으로 김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7조2천억 원을 투입해 홈플러스 인수를 확정했다. 홈플러스 노동자의 고용안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MBK파트너스의 핵심 경영인인 김 회장을 불러 직접 이야기를 듣겠다는 취지로 증인 채택한 것이다.
당시 홈플러스 인수는 아시아 최대 인수합병(M&A) 거래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지만 MBK파트너스는 고용안정 등을 놓고 노조와 대화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홈플러스를 투기자본에 매각하지 마라 시민대책위원회’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김 회장은 국감을 하루 앞두고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회에 불참을 통보했다. 이에 홈플러스 노조는 국감 당일 서울 용산구 김 회장 자택 앞에서 국감 출석과 고용안장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김 회장과 국회의 인연은 2015년 홈플러스가 다가 아니다.
MBK파트너스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로 국내 다수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만큼 김 회장은 홈플러스 이슈 아닌 다른 사안으로도 국회와 깊은 연을 맺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도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문제로 증인으로 채택됐다.
당시 국토교통위원회도 사모펀드의 영풍 인수에 따른 지역사회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김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는데 김 회장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두 상임위 국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2022년 국감에는 MBK파트너스를 대표해 김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 출석한 사례도 있다.
2022년 10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는 bhc 가맹점주 상생 논란과 관련해 윤종하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 부회장은 당시 여러 수익성 지표를 바탕으로 상생 경영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질의에 “MBK파트너스가 bhc의 주요 주주인 것은 맞으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일관했다.
이때 국감에서는 홈플러스가 입점 상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윤 부회장은 이에 대해서도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의 주요주주일 뿐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질문을 피해갔다.
▲ 2022년 10월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경만 민주당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윤종하 MBK파트너스 부회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캡쳐>
MBK파트너스는 당시 윤 부회장의 해명으로 오히려 더 수세에 몰리기도 했다. 당시 MBK파트너스의 상생 이슈를 문제 삼은 김경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를 넘겨 2023년까지 지속해서 김 회장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하게 촉구했다.
김 회장이 그동안 국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만큼 시장에서는 이번 국회의 증인 채택 역시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실 한 관계자는 “김 회장 출석과 관련해 정무위 내부적으로도 회의적인 것도 사실”이라며 “만약 김 회장 측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다면 적절성 등을 판단해 법적 책임을 묻는 등 그에 따른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탄핵 정국 속 긴급현안질의를 여야 합의로 마련할 정도로 홈플러스 사태의 사회적 파장이 이전과 다른 만큼 김 회장이 직접 국회에 출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 악화 속 정치권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세무당국이 MBK파트너스를 정조준하고 있는 점도 김 회장에게 부담일 수 있다.
금융당국은 홈플러스 채권과 관련해 개인투자자 피해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계획을 세웠고 국세청은 특별 세무조사를 맡는 서울청 조사4국을 MBK파트너스 세무조사에 전격 투입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매각뿐 아니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 인수 등 다수의 국내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김 회장이 정치권과 당국 눈치를 무시할 순 없는 셈이다.
여론이 좋지 않을 때 그룹이나 기업의 최종 결정권자인 회장이 직접 국회 증인으로 출석해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신뢰 회복의 기반을 마련한 사례도 과거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지난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처음으로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내부통제 강화를 약속하며 신뢰 회복의 기반을 마련했다.
김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첫 채택된 2015년에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불공정거래 이슈를 정면돌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무난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MBK파트너스가 국내 금융권에서 신뢰를 잃어 국내사업의 지속가능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MBK파트너스의 국내 사업이 사면초가에 몰린 만큼 김 회장이 국회 증인으로 출석해 직접 해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김 회장 역시 지속해서 지역사회와 공존을 강조해왔다.
김 회장은 지난해 3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MBK파트너스는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방향성을 지키면서 수많은 성과를 냈다”며 “MBK파트너스는 투자자와 파트너, 다른 이해관계자는 물론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방식으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