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03-11 12:16:19
확대축소
공유하기
▲ 이마트가 기존 관행대로 고위 관료 출신이나 학계 인물을 새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왼쪽부터 이마트 새 사외이사 후보자인 이준오 세무법인예광 회장, 김재욱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자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비즈니스포스트] 이마트가 사외이사 구성을 놓고 변화에 주저했다.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4명 가운데 3명을 교체했는데 그동안 해왔던 관행대로 고위 관료와 학계 출신을 뽑았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흐름과 다소 결이 다른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이마트는 2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새 사외이사 3명(이준오·최지혜·김재욱)을 선임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주주총회소집결의를 공시했다.
새 사외이사의 면면을 보면 유통업계 현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준오 세무법인 예광 회장은 국세청 출신이다. 국세청 법령해석과장과 서울청 조사3국장,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조사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을 역임했다. 196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196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입학해 중퇴했다. 사실상 동문이다.
대기업이 고위 관료 출신 인물을 사외이사로 앉히는 것은 대관 업무에 도움을 받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마트도 이런 점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대략적인 시각이다.
김재욱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학계 경력이 긴 인물이다. 1997년부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유통전문경영자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유통학회 이사와 한국로지스틱스학회 상임이사, 중소기업청 중소유통 시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의약품유통개혁 기획단 위원, 한국 프랜차이즈협회 자문교수 등을 맡고 있다.
유통 전문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현업에서 비즈니스 경험을 갖춘 인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새 사외이사 후보인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역시 유통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최 연구위원은 소비자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비자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이듬해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 문화 관련 전망을 담는 ‘트렌드코리아’라는 저서에 매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마트가 새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인물 모두 이사회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라고 유통업계는 바라본다. 이마트는 그동안 권력 기관에서 고위 관료로 퇴임한 인물이거나 교수로 사외이사를 대부분 채워왔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될 이상호 사외이사는 부산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대전지방검찰청장 등을 지낸 검사 출신 법조인이다.
임기 만료로 퇴임하게 될 서진욱·신언성·김연미 사외이사 역시 이마트의 기조에 맞는 인사들이었다. 서진욱 사외이사는 국세청 징세법무국장과 국제조세관리관, 대구지방국세청장,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뒤 2020년부터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조세 및 세무 고문으로 있다.
신언성 사외이사는 감사원에서 감사청구조사 국장과 금융기금감사 국장, 공직감찰본부 본부장 등을 지낸 인물이며 김연미 사외이사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마트가 올해 정기 주주총회와 관련해 주주총회소집결의 공시를 미뤄, 한 때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일정이 밀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마트는 최근 10년 동안 2월 말이면 주주총회에 올릴 안건을 확정하고 이와 관련한 공시를 냈다. 하지만 올해는 평소보다 공시 날짜가 10여 일 늦어졌다.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중요해지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마트의 행보가 다소 한가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의 경쟁사인 롯데그룹은 최근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중요하게 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쇼핑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웰푸드, 롯데케미칼 등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는 모두 고위 관료와 학계 출신을 선호했던 과거 기조에서 벗어나 올해는 유통현업에서 발로 뛴 경영자 출신 인물을 사외이사로 대거 선임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에서 LG그룹이나 CJ그룹 등 다른 대기업 출신 인물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는 점을 두고 위기 극복을 위한 전향적 모습까지 보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유통업계 라이벌인 롯데그룹이 아니더라도 사외이사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지배구조의 강화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 측면에서 많이 요구되고 있는 사안이다.
이마트가 사실상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단독 경영 체제로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이마트의 사외이사 관련 전문성 강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2023년 충격적인 적자 이후 지난해 경영 효율화를 통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본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사업에서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