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월2일 신세계그룹 신년사에서 본업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뉴스룸 유튜브 갈무리> |
[씨저널] 삐에로쇼핑, 제주소주 푸른 밤, 부츠, 레스케이프호텔, 스무디킹 코리아. 그리고 G마켓.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한때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사업들이다.
정 회장은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하며 유통업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이어왔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삐에로쇼핑은 2년, 부츠는 3년 만에 철수했고, 제주소주도 결국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스무디킹 코리아 역시 철수를 결정했다.
그나마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G마켓과 레스케이프호텔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특히 G마켓은 매년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정용진 회장은 지금까지 신사업의 부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는 빅토리아 홀트의 말을 인용하며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과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업계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의 사업 실패가 잦아지면서 정회장이 벌이는 신사업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 달라진 정용진 행보, 이마트 흑자로 돌려놓다
그런데 2023년 말을 기점으로 신세계그룹과
정용진 회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용진 회장은 그동안 애용하던 SNS 활동을 멈췄고, 신사업에 대한 언급도 사라졌다. 대신 정 회장은 기존 사업의 체질 개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성과로 나타났다. 이마트는 2024년 영업이익 471억 원을 냈다. 2023년 냈던 469억 원의 영업적자를 단숨에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
지난해 말 통상임금 적용 확대 판결로 반영된 퇴직충당금을 제외하면 실질 영업이익은 2603억 원에 이른다. 최근 3년 내 최대 영업이익이다.
물론
정용진 회장이 홀로 이룬 성과는 아니다.
정용진 회장의 변신 뒤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 사장과 한채양 이마트 대표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정용진 회장은 그룹 내에서 독보적 존재였다.
정용진 회장이 계속해서 신사업에 도전하고, 그 신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그룹 안팎에서는 정회장의 의사결정에 비판적인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이 직접 발탁한 두 사람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신세계그룹 경영진과 'AI 석학'으로 불리는 앤드류 응 교수가 2024년 7월30일 조선팰리스호텔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채양 이마트 대표이사, 앤드류 응 교수,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 정형권 지마켓 대표이사. <신세계그룹> |
◆ 정용진의 변신 뒤에 있는 두 사람, 임영록과 한채양
임영록 사장은 ‘신세계그룹의 미전실(미래전략실)’이라고 불리는 경영전략실장으로
이명희 총괄회장이 선임한 인물이다.
신세계그룹 최고의 부동산 및 개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임 사장의 발탁 당시 “임 사장이 그룹 내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온라인에 쏠리던 역량을 오프라인으로 다시 가져오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마트는 최근 프리미엄 복합 쇼핑몰 개발과 같은 새로운 오프라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마트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체류형 쇼핑 공간을 늘려 고객의 방문을 유도하고 소비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스타필드다. 임 사장은 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한채양 대표 역시 신세계그룹의 주요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
정용진의 사람’으로 불리던 강희석 전 이마트 대표를 대신해
이명희 총괄회장이 직접 선임한 인물이다.
한 대표는 2023년 11월9일, 이마트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회사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이마트 본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한동안 중단했던 신규 점포 출점을 재개하겠다고 밝히며, 오프라인 사업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마트의 최근 행보와 두 사람의 역할을 보면,
정용진 회장의 ‘변신’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온라인과 신사업 확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오프라인 사업의 내실을 다지고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용진 회장이 온라인 사업을 버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 회장은 최근 중국 알리바바와 협력하며 ‘이커머스 리빌딩’에 나섰다. 기존처럼 무리한 투자를 지속하기보다는, 글로벌 이커머스 강자의 유통망과 인프라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마트의 흑자 전환은 단순히 비용 구조의 개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용진 회장의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다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으로 선회한 셈이다.
정용진 회장의 변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리고 이 변화가 이마트를 더욱 강력한 ‘유통 공룡’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