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송 핵심쟁점은 SK그룹이 성장하는 데 노소영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활용됐는지 여부다.
항소심 재판부는 SK그룹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갔다고 보고 6공화국의 특혜가 SK그룹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윤석천 전 청와대 1부속실장은 비자금이 SK쪽에 흘러간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맡았던 함승희 전 검사도 “현금 300억 원이면 사과 궤짝으로 최소 200~300개 분량이다”고 말하면서 현실적으로 비자금이 SK그룹에 넘어갔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경우,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재산분할 금액 1조3808억 원이라는 규모는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최 회장의 재산분할 부담은 줄어들고 SK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급격하게 축소될 수 있다. SK그룹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4년 11월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SK >◆ SK그룹이 두려운 '소버린 사태' 악몽
대법원에서 항소심의 판단처럼 1조3808억 원의 재산분할이 확정될 경우 최태원 회장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지주사 SK 지분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으로서는 SK그룹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고 막대한 돈을 마련할 방법을 찾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SK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는 예상치 못한 ‘허점’을 노출할 수도 있다.
이는 저절로 과거 SK그룹이 겪었던 '소버린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소버린 사태는 2003년 SK그룹이 SKC&C-SK-사업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던 시기에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의 지분을 대량으로 매입하여 경영권 장악을 시도했던 일을 일컫는다.
소버린은 당시 최태원 회장 일가의 SK 직접 지분율이 매우 낮은 점을 파고 들어 SK텔레콤 매각, 이사진 교체 등을 요구하며 SK그룹 전체를 흔들려 했다
SK그룹은 소버린의 공세에 맞서 어렵게 경영권을 지켜낸 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015년에는 SKC&C와 SK의 합병을 통해 단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였다.
이러한 지배구조 개편은 외부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으로 막대한 재산분할이 현실화되고 최태원 회장의 지분이 희석된다면 SK그룹이 다시 적대적 M&A에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최태원 회장은 현재 SK 지분 17.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SK그룹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배구조의 안정성이 흔들린다면 SK그룹은 장기적 성장전략 추진보다는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기 위한 노력에 그룹의 역량을 더욱 쏟아야 하고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장동력도 주춤해질 수도 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