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3-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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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이 MBC 드라마와 최초로 계약을 맺었다. 사진은 티빙과 MBC에서 동시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 포스터.
[비즈니스포스트] CJENM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티빙이 지상파 방송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티빙은 웨이브와의 합병이 지연되는 사이 누적 적자는 쌓여가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자금 여력도 빠듯한 상황이다. 결국 지상파 결속 강화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지적이다.
9일 OTT 업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지상파 방송과의 제휴가 점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SBS와 손잡고 콘텐츠 제공을 시작했으며 쿠팡플레이도 MBC의 주요 프로그램들을 대거 확보하며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지난해 9월 웨이브의 지상파 3사 콘텐츠 독점 계약이 종료되면서 지상파의 선택지가 넓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티빙 역시 지상파 방송사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모습이다. 최근 MBC와 제휴를 맺고 금토 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을 동시 방영하기 시작했다. 티빙이 MBC 드라마와 정식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언더커버 하이스쿨’은 티빙 인기 드라마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와 예능을 동시 방영하는 전략은 비용 부담은 낮고 트래픽 확보는 확실한 ‘가성비 카드’로 평가된다. 이미 검증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지상파 시청자층을 자연스럽게 유입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여력이 부족한 티빙 입장에서는 가입자 이탈을 막고 자체 제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웨이브와의 합병을 추진하는 점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웨이브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설립한 ‘POOQ’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가 합작해 만든 ‘옥수수’가 합쳐져 탄생한 OTT 플랫폼이다. 다양한 지상파 콘텐츠를 기반으로 운영돼 온 점이 특징이다.
▲ 올해 티빙이 오리지널 작품 15편가량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티빙>
이런 상황에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자체 콘텐츠 제작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지상파 콘텐츠를 보다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OTT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안정적 이용률’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여겨진다.
다만 웨이브와의 합병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있다. 합병 논의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합병이 완료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업계에서는 합병이 성사될 경우 가입자와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유의미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2대 주주인 KT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 1위 입지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월 기준 티빙의 MAU는 679만 명으로 국내 OTT 3위에 머물렀다. 한때 앞서 있던 쿠팡플레이에도 밀렸고 넷플릭스와는 두 배 가까운 격차가 벌어졌다. 웨이브와의 합병을 통한 이용률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주희 티빙 대표는 2월 열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티빙과 웨이브의 가입자 구성이 달라 겹치는 가입자 규모는 30% 수준에 그친다”며 “양사가 합병을 통해 콘텐츠와 가입자 수가 대폭 늘어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티빙의 지상파 콘텐츠 확대가 독자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OTT 업계에서 ‘자체 콘텐츠 = 플랫폼 경쟁력’이라는 공식이 굳어진 상태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쿠팡플레이의 ‘안나’ 등 차별화된 '킬러 콘텐츠' 없이 가입자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티빙의 방영 목록을 살펴보면 실시간 인기 드라마 100개 가운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인 ‘티빙 오리지널’은 16개에 불과하다. 자체 제작 콘텐츠 비중이 높아야 플랫폼 경쟁력도 함께 커지지만 현재 티빙은 제작비 증가 등의 이유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전무한 상태다.
넷플릭스는 올해 드라마, 영화, 예능 등 40여 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티빙은 15편 내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어 콘텐츠 경쟁에서 쉽지 않은 싸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티빙의 실적을 감안하면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티빙의 영업손실은 2021년 762억 원, 2022년 1192억 원, 2023년 1420억 원에 이어 2024년에도 710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작품 하나당 수십억 원 이상이 투입되며 흥행에 실패하면 리스크도 그만큼 커진다. 최근 주연급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가 치솟으며 제작비 부담이 한층 가중된 상황이다.
실제로 제작비 500억 원이 투입된 CJENM tvN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는 기대와 달리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쳤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 역시 평균 시청률 5%대에 머물며 흥행 면에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최용현 KB증권 연구원은 “지상파 방송사와 국내 검색 포털 등이 모두 글로벌 OTT와 협업을 시작하며 티빙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당장 눈앞의 수익화보다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용자를 확보하고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