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칠레곤에 위치한 수랄라야 석탄 발전소에서 매연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기후기금 지원 약속을 잇달아 철회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은 지원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지원 대상국들이 공개적으로 불신을 드러내는 등 글로벌 기후대응 협력을 향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정부는 6일(현지시각) ‘공정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이 전했다.
데이나 브라운 주 남아공 미국 대사 대리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JETP와 관련된 모든 재정 지원 약속은 철회되고 이전에 자금을 지원받아 계획 또는 실행 단계에 있던 보조금 프로젝트도 모두 취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JETP는 2021년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함께 구성한 공동 프로그램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개도국들의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4년 6월 기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선진국들이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약 465억 달러(약 67조6730억 원)가 넘는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과 결성한 국제 파트너 그룹(IPG)을 통해 약 200억 달러(약 28조9260억 원)를 제공하기로 했었다. 미국이 탈퇴하면서 전체 JETP 지원 금액의 약 절반이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게 된 것이다.
다만 JETP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은 미국 이탈을 비판하면서도 지원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헨 플라스바르트 독일 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은 공식성명을 통해 “미국의 행동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JETP가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탈에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는 JETP 자체를 향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익명의 인도네시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미국 탈퇴로 인도네시아의 JETP를 향한 신뢰성이 상실됐다”고 강조했다.
남아공도 미국 탈퇴로 JETP를 통해 받는 지원금이 138억 달러(약 19조9589억 원)에서 128억 달러(약 18조5126억 원)로 삭감된다.
조엔 야위치 JETP 남아공 부서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다른 JETP 참여국들은 남아공에서의 지원 프로그램 이행을 확고히 다짐하고 있다"며 "대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다른 참여자들과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관세 시행을 위한 행정명령 문서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 사진기자들을 향해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 산하 기후기금 '녹색기후기금(GCF)'에 지원하기로 한 40억 달러(약 5조7844억 원)도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지금까지 행보를 고려하면 기후와 관련된 대외 원조 예산을 전액 삭감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에만 약 110억 달러(약 15조 원)를 기후대응 원조 예산으로 편성했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연간 약 1149억 달러(약 146조 원)로 집계된 글로벌 기후재원의 약 10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연이어 기후기금 지원을 철회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글로벌 기후대응 협력 체계를 약화시킬 것이라 지적했다.
마리나 실바 브라질 환경 및 기후변화부 장관은 6일(현지시각) 인도 델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기후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고갈시키고 당사자들의 신뢰와 확신을 무너뜨리는 부정적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후대응 노력이 위축될수록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과 협력 수준은 계속 줄어만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바 장관은 이어 "이제는 지난해 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이 지켜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 관세 분쟁으로 인해 모두가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브라질은 올해 11월 개최되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주최국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난해 기후총회에서 합의된 연간 3000억 달러(약 433조 원) 규모 기후재원의 조달 방법이 논의될 것으로 예정돼 있다.
한편 기후대응을 주관하는 국제기관들은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미국이 빠지면서 발생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안드레 데 라고 COP30 의장은 5일(현지시각) 유엔 본부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는 모든 국가 간의 깊고 신속하며 지속적 협력 없이는 인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각 국가와 기관들은 기후 문제의 크기에 걸맞는 기여를 제공할 능력이 충분하며 이를 반드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도 "브라질은 COP30 의장국으로서 지금부터 2035년까지 개도국들이 필요로 할 글로벌 기후재원 재정을 확보할 방법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 역풍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