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일론 머스크가 수장을 맡은 정부효율부(DOGE)의 대대적 구조개혁의 배경에는 심각한 미국의 국가부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론 머스크가 2025년 2월26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각료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는 국가로서 지속될 수 없다. 현재 2조 달러 (재정)적자가 있다.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만으로도 현재 국방부 지출을 넘는다. 우리는 국방부에 많은 돈을 쓰나,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로 1조 달러 이상을 쓴다. 이것이 지속되면, 이 나라는 사실상 파산한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 우리는 1조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이는 7조 달러 예산의 약 15%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이후 만든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6일 내각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자신이 추진하는 정부 구조개혁의 이유를 밝혔다. 현재 자신이 추진하는 대대적인 정부 기구 폐쇄와 축소, 공무원 해고가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 때문이라는 것이다.
머스크의 말대로 미국의 부채는 심각하다.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지난해 9월30일 종료된 미국 연방정부의 2024년 회계연도에서 연방정부는 1조8천억 달러의 예산적자를 보고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1380억 달러(8%)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적자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4%에 해당한다.
미국은 5년 연속 1조 달러가 넘는 예산적자를 보여왔다. 연방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2023년 96%에서 2024년에는 98%로 늘었다. 미국의 2024년 국내총생산은 29조1670억 달러다.
국가의 총부채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는 약 36조2200억 달러다. 이 국가부채로 인해 연방정부는 1월에만 약 3922억 달러의 이자가 발생했다.
의회예산처의 예상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연간 이자부담은 2025년 회계연도에 9520억 달러에 이른다. 2035년에는 1조8천억 달러까지 늘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올해에 매일 26억 달러의 이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머스크의 말대로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국가로서 지속 가능하기가 힘들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정부 구조조정에 나서고,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관세를 물리는 관세 전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이런 부채 문제가 있다.
심각한 재정적자 등 국가부채 상황에서 감세까지 추가됐기에 트럼프로서는 다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부 기구 축소 및 공무원 해고를 밀어붙이는 배경이다.
미국 대외원조의 상징이자 미국 가치를 전파하는 대표적 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쇄하고, 국세청에서만 4만5천 명을 해고해 현재 인력을 절반으로 줄였다. 보훈부에서도 8만 명을 해고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 내에서 낭비와 부정, 비효율이 판친다고 연일 떠들고 있다. 소셜시큐리티 연금 수령자 중 사망자가 수천만 명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연금을 받는다는 주장은 가짜뉴스다. 비용 부족으로 고치지 못한 컴퓨터 코딩의 에러로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가 연금을 실제로 받는 사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머스크는 기존 1125건 계약 중 417건을 취소해 예산을 절약했다고 하는데, 취소된 계약의 대부분은 이미 지출이 완료된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에 5천만 달러 어치의 콘돔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가자에 가족계획 프로그램 및 긴급 피임 등을 포함해 의료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을 위한 지원은 있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와 머스크의 이런 시도가 미국의 부채를 줄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그들의 정부기구 구조조정으로 삭감될 비용은 양동이에 가득찬 물에서 한두 방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오히려 미국의 연방적자 등 부채를 아마 더 증가시켜 놓고 자리를 떠날 공산이 크다.
미국 연방정부가 2024년에 지출한 7조 달러에서 60%가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비용이다.
다시 말해 연금인 소셜시큐리티,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노년층) 및 메디케어(저소득층), 퇴직군인 연금, 실업보험수당, 빈민층을 위한 영양지원프로그램 등이 예산 지출의 60%를 차지한다. 13%는 부채에 대한 이자 지출이다. 4%만이 임의 지출로 이론적으로 트럼프에게 줄일 수 있는 비용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실상 절반 이상은 지출할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국가부채를 줄이는데 있어 제일 요건인 균형예산을 이루려면, 우선 머스크가 말한 대로 앞으로 연 2조 달러에 달할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예산의 60%에 달하는 소셜시큐리티 등을 손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트럼프가 기존의 공화당 의원들이나 대통령과는 달리 사회복지 축소를 약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나 당선 이후에도 소셜시큐리티 등 중하류층 복지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의 지지층인 이른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구성원들이 대부분이 소셜시큐리티나 메디케어 등에 의존하는 백인 중·하류층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감세를 약속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가 지난 2017년 집권 때 실시했던 감세안 시한이 다가오자 연장을 넘어 아예 영구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 감세안이 폐지되지 않고 유지되면 향후 10년 동안 약 4조 달러의 세수 손실이 발생한다. 2035년까지는 5조5천억 달러의 세수 손실이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부과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나마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세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라는 것은 상대국도 대응하는 문제인 데다 관세를 물리면 미국의 물가가 오른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보수 정당인 공화당의 대통령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국방비 축소까지 밝히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와 고위 간부들에게 향후 5년 동안 매년 국방 예산의 8%를 삭감할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19일 보도했다.
올해 국방부 예산은 약 8500억 달러이다. 올해 기준으로 8%면 680억 달러 정도가 삭감되고 이런 추세라면 5년 뒤에는 미국 국방예산은 올해의 거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가 된다.
트럼프도 지난 13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국방비를 삭감하는 군축협상을 제안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첫 만남들 중의 하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만남이다”며 “그리고 나는 ‘우리 군사예산을 절반으로 줄입시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고, 나는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게 재정적자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고질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미국은 건재하다. 패권국가이기 때문이다. 패권국가로서 세계를 관리하는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에 빚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빚을 중국 등 외국이나, 개인들이 미국 채권을 사서 지탱하고 있다. 미국이 패권국가로 군림하는 한 이 구조는 유효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치러야 할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한다.
동맹에게 스스로 방위를 책임지라고 하고, 관세를 올려서 미국 시장을 보호하고, 미국 기업만을 보호하려 한다. 그런 미국을 보면서 중국 등이 과연 계속 미국 채권을 사줄 것인지 의문이다.
트럼프의 미국에게 재정적자나 국가부채는 이전의 행정부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에게 미국의 재정적자나 국가부채는 정말로 지속가능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