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개헌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체적으로 의견이 모이지만 정치적 목적은 달라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맨 왼쪽부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역시 압권은 헌법재판소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 최종 의견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개헌과 정치 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한다.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 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겠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다음날 거들었다.
“본인 깊은 마음 속에서 진정성을 갖고 얘기했다. (중략)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지 못하는 현 시스템, 제왕적 대통령 문제뿐 아니라 제왕적 국회 등 헌법 시스템이 87체제에 머물러 있다.” 지금의 헌법 체제가 문제가 많아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조기 대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도 나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8일 “만에 하나 올해 대선이 열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개헌을 이끌고 3년 뒤인 2028년 물러나겠다”면서 ‘임기 단축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다음 임기 중에 대통령이 개헌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고, 3년 뒤 임기를 마쳐야 한다”면서 한 전 대표와 같은 자리에 섰다.
요컨대 국민의힘 쪽은 일제히 이번 12·3 계엄선포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임기 단축 개헌론은 들고나온 셈이다.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 쪽이야 모든 정치 쟁점을 한 방에 날려버릴 개헌 카드에 매달리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재미있는 대목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도 같은 장단에 춤을 추기시작했다는 점이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대선 전과 이후로 시기를 나눈 ‘2단계 개헌론’을, 김동연 경기지사는 차기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 2028년 총선과 동시에 대선을 치르는 개헌안을 언급한 바 있다.
정말로 개헌이 '동네 북'이 됐다. 모두가 한 번씩 두드리고 지나간다. 딱 사람만 빼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란 진압 먼저’를 이유로 개헌론 확산에 경계심까지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개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38년이 흘렀으니,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헌법 체계가 필요하다고 바라본다. 하지만, 어찌 세상 일이 그리 쉽겠는가.
2025년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개헌론을 살피면서 다음 몇 가지는 짚어봤으면 한다.
하나,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이 진짜 문제인가.
현 시점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양극화(국민의힘 vs 더불어민주당)와 극우화 아닌가. 대통령 권한을 줄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더 이상 안 싸울까.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면 그 권한은 국회가 받아야 하는데, 국회는 여야 대치 속에 더욱 더 무능해지지 않을까.
둘, ‘대통령 임기 단축’은 만병통치약인가.
다음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 대선과 총선을 한번에 치른다면 여소야대 국회가 없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비로소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발목잡기에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계엄을 선포할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 끝, 행복 시작!
하지만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여소야대 국회는 국민의 선택이다. 어느 한 쪽의 독주를 막고, 경고를 보낼 유권자의 유일한 수단일 수 있다. 협치 또는 타협 정치가 진짜 해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4년 중임제를 두고 왜 지금이냐고 물어야 한다. 야권은 ‘반란 물타기’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참고로 이 대표도 지난 2022년 20대 대선 후보 시절 ‘4년 중임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을 담은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필요할 경우 자신의 임기를 1년 단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셋, 12·3 계엄 사태의 ‘헌법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갈급한 것은 국론 분열 극복이다.
상대를 “처단”하겠다는 극단주의자들, 선거부정을 외치면서 어떠한 이성적 대화도 거부하는 음모론자들, 이들을 어떻게 품을지 좌파 우파를 불문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극좌, 극우를 빼고 민주정의에 동의하는 폭넓은 정치세력이 합의하고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가 뒤따를 때 비로소 국론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개헌은 반대 편이 동의하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다. 1987년 이후 수많은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서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개헌은 못했지만 우리 정치는 적응과 진화를 통해 1987년 헌법 체계의 한계 속에서도 이만큼 민주주의를 키워왔다. 피를 흘리지 않고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저력을 보여줬다.
개헌을 두고 조급할 필요 없다. 개헌은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안우현 정책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