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세이브코리아가 연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정국에서 극우세력과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조기대선이 펼쳐질 수 있는 국면에 중도층에서 멀어지는 모습에 이들의 정치적 목적이 무엇일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당내 강성지지층과 보조를 맞춰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4일 국민의힘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극우세력 결속을 갈수록 강화하는 일을 두고 나름의 정치적 목적이 뚜렷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앞서 윤상현·김기현·나경원·추경호 등 국민의힘 의원 37명은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보수성향 기독교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관한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연단에도 올랐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34%가 넘는 이들이 극우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들은 그동안 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이날 극우집회에서는 '북한지령설', '좌파 독재' 등 상식을 벗어난 표현을 동원해 윤 대통령 직무 복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나경원 의원은 윤 대통령이 최후진술 과정에서 내놓은 '북한지령설'을 다시 꺼내들었다.
▲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세이브코리아가 연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모스 탄 전 미국 국무부 국제형사사법 대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 의원은 1일 여의도 집회 무대에 올라 "민주당, 민노총과 북한 조선 노동당은 도대체 무슨 관계냐"며 "이번 계엄사태, 탄핵사태에서 우리가 알게 된 대한민국 곳곳에 암약하는, 입법·사법·언론에 암약하고 있는 좌파 기득권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1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열린 '자유통일을 위한 국민대회'에서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는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며 헌법기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까지 내놨다.
조기 대선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고, 우리나라 대선은 중도층 지지를 통해 당선이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를 약속하면서 중도층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왜 국민의힘 중진 및 다수 의원들은 중도층과 멀어져 극우세력과 동행하려 할까.
상식에 반하는 이들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 이후 벌어질 당권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가 우선 나온다.
현재 국민의힘 당원 성향은 12·3 계엄선포를 경과하면서 강경 우파 성향이 득세하고 있다. 야당의 발목잡기로 불가피한 계엄 선포였으며, 윤 대통령 탄핵되면 박근혜 대통령 시절 처럼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고 계속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공포가 지배한다.
여기에 조기 대선 국면이 어떻게든 정리되면 곧바로 당대표 선거가 치뤄진다. 이에 당권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강성 지지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뜻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야 당권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6일 JTBC '오대영 라이브'에서 "강성 지지층이 지지하는 분이 우리 국민의힘의 대선후보가 되신다면 강성 지지층의 세를 그대로 이어갈 것"이라며 "그걸 정치 동력화하고 그것으로 대선에 지더라도 당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여의도에서는 벌써부터 강성 지지층의 지지가 쏠린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차기 대선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기에 김 장관이 조기 대선에서 패배해도 국민의힘 중진 및 다수 의원들은 그를 앞세워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여야할 것 없이 대선에서 패한 후보가 차기 당대표로 직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 홍준표 대구시장(오른쪽),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2월28일 2.28민주운동 65주년을 맞이해 대구 달서구 2.28민주운동기념탑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3월 대선에서 패한 뒤 같은해 8월 민주당 당대표에 올랐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5월 대선에서 패한 후 같은해 7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김 장관이 당대표에 오르면 극우세력과 보조를 맞춰 지지율을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중진 의원들의 당내 영향력 역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와 별도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극우세력과 보폭을 맞추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트라우마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는 찬성 63명, 반대 56명으로 찬성이 더 많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나중에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의 책임을 모두 유승민 의원 등 '배신자'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 대통령 탄핵을 당이 쇄신할 계기로 삼는 대신 탄핵을 주도한 정치인들을 철처히 당에서 몰아내려 했다. 결국 당은 탄핵 반대 세력의 철옹성이 됐다.
이를테면 2025년 두 번째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의원들은 '배신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극우집회 무대에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는 4일 KBS광주 1라디오 '출발 무등의 아침'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어떤 갈등 이런 것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그 프레임으로 정치적으로 고생해 온 것은 사실"이라며 "그것이 보수층이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제가 지지가 약한 것과 직결되는 그런 부분이고 제 약점"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