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정농단 실상을 드러낼 ‘키’로 부상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비망록을 본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낱 ‘루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는데 야당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일부 지시한 내용도 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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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한 증언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2014년 원내대표를 할 때 김 전 비서실장이 김영한 비망록에 나오는 지시사항을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전달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만 해도 김 전 실장은 “비망록을 본 일이 없어서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며 비망록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비망록에 등장하는 지시내용도 관련되지 않았다고 한사코 부인했다.
박 의원은 2014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김 전 실장의 재가를 받아야 일처리를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당시 조 수석에게 전화를 걸면 ‘실장님이 연락이 안 됩니다. 기다려주세요’가 답변이었다”며 “조 수석은 전화교환수 역할을 할 뿐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고 밝혔다.
박 의원의 추궁이 계속되자 김 전 실장은 “지시를 전혀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며 “비망록에 ‘長(장)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해서 모두 제 지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는 그동안 줄곧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련이 없다’고 각종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하던 데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최근 공개된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세월호 특별법은 좌익세력이 벌이는 일’ ‘세월호 인양-시신인양 X 정부책임, 부담’ 등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추정되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전 실장을 향해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며 “사람은 다 죽는데 (나중에) 어떻게 (김 전 수석을)보려고 하냐”며 호통쳤다.
박 의원은 “김영한 전 수석을 제끼고 민정수석을 바지저고리로 만들고 우병우 전 수석이랑 비서실장이 짬짜미 돼 사람 바보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김영한 전 수석이 그만두고 매일 술을 먹어 급성 간암이 왔다”며 “오죽했으면 고인의 어머니가 이렇게 언론사에 통째로 줬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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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
김 전 수석의 어머니는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들어간 뒤 매일 괴로워했다”며 “우리 영한이가 민정수석인데 김 전 실장이 업무를 주도하고 우병우 민정비서관(당시)과 직접 상의를 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의 어머니는 “아들이 청와대를 그만둔 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며 “그러다 급성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황망해서 유서라도 없는지 싶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한권씩 보다가 이 다이어리(비망록)를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은 2014년 6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는데 정윤회 문건유출 파동이 벌어진 뒤 이듬해 1월 김 전 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라고 지시하자 사표를 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병우 전 수석이었는데 김 전 수석이 청와대를 떠나자 우 전 수석이 그 뒤를 이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8개월간 청와대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김 전 수석은 8월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