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비야디(BYD)가 국내 낮은 해치백 수요를 의식해 소형 해치백 전기차 '돌핀'(사진)의 국내 출시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BYD >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16일 승용 전기차 부문 브랜드의 한국 공식 출범을 선언한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가 예상과 달리 소형 해치백 '돌핀'을 제외한 3종의 전기차만 국내 우선 출시키로 했다. 회사는 돌핀의 환경부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출시 여부를 확정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돌핀은 BYD 세계 판매량의 30~40%를 책임지는 핵심 차종일 뿐 아니라, 국내에서 가장 낮은 가격대에 출시할 수 있는 엔트리(진입) 전기차 모델이다.
한국은 '해치백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이 차급 선호도가 낮아, BYD가 돌핀 출시 여부를 놓고 망설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유럽 주요 자동차 시장 연간 판매 1위 차종을 보면 독일은 폴크스바겐 골프, 프랑스는 르노 클리오, 이탈리아는 피아트 판다가 차지했다. 이들은 모두 외형상 해치백으로 분류된다.
해치백은 이름과 같이 후방에 트렁크 대신 위로 끌어올리는 문인 해치가 달려있어 객실과 적재 공간이 통합된 차량을 말한다.
세단과 비교해 C필러(차 지붕과 차체를 잇는 3번째 기둥) 부분에 트렁크 대신 테일게이트가 있어 세단의 트렁크 부분을 잘라낸 형태면 해치백, C필러부터 지붕이 후단까지 수평으로 이어져 끝에 문이 달린 형태면 왜건으로 분류된다.
해치백은 세단보다 적재 공간이 높아 큰 짐을 싣기에 유리하다. 또 차량 형태상 리어 오버행(뒷바퀴에서 차량 끝단까지의 거리)이 짧아 가속이나 코너링을 할 때 운동성능 측면에서 뛰어난 장점이 있다.
다만 국내에선 해치백 선호도가 매우 낮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해치백은 연간 3만3791대가 판매되는데 그쳐 전체 승용 신차 판매(143만9310대)의 2.3%에 그쳤다.
현재 국내 판매되고 있는 국산 해치백 차량은 경차 모닝 단 한 종뿐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해치백의 존재감이 처음부터 이토록 미미하진 않았다.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 생산 모델인 포니가 해치백 차량이었고, 1980년대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현대차 엑셀과 기아 프라이드 역시 처음엔 해치백 형태로 출시됐다.
현대차는 2011년 준중형 해치백 '벨로스터' 출시를 계기로 준중형 해치백 'i30', 중형 왜건 'i40' 묶어 대대적 'PYL(Premium Younique Lifestyle)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며 해치백·왜건 모델 판매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마케팅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2017년 현대차 코나를 시작으로 2019년 기아 셀토스, 2020년 한국GM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등 상대적으로 공간 활용도가 더 높은 소형 SUV가 잇달아 출시되면서, 국내 해치백은 그나마 많지 않던 수요를 완전히 잠식당했다.
2019년 르노 클리오, 2021년엔 쉐보레 아베오 등 해치백 모델들이 판매 부진 끝에 단종됐다. 현대차의 해치백 모델들도 판매 부진을 지속하다 2022년 벨로스터를 끝으로 모두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K3 고성능형 모델 K3 GT까지 단종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해치백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은 자동차의 크기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연결짓는 경향이 강한 국내 차 문화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해치백은 소형차에 가장 적합한 형태라 작은 모델이 주를 이루는 데다, 왜건과 함께 적재공간을 위해 세단의 안정적 후면 디자인 비율을 내준 '짐차'라는 이미지도 강한 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한국은 유럽과 비교해 자동차 역사가 짧아 실용적 자동차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실용적 2박스카인 해치백보다 3박스카인 일반 세단처럼 나눠진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유럽과 달리 국내엔 모터스포츠가 대중적이지 않은 점도 해치백 선호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보인다.
유럽 소비자들이 차를 구매할 때 실용성과 함께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성 등 운동성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과 비교해 국내 소비자들은 승차감과 실내 편의사양 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평가된다.
해치백이 갖춘 경쾌한 운동 성능이 국내 소비자엔 큰 매력이 아닐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 1인 가구가 늘고 패밀리카가 아닌 개인 수요에 맞춘 자동차 수요가 높아지면서 국내 소비자들 사이 실용적 차량 구매가 증가하는 추세도 관측된다.
국산 소형 세단과 해치백 모델들이 잇달아 단종되면서 2021년 11만8959대로 전년보다 31.4%나 줄었던 국내 소형차 판매량은 2022년 13만6893대, 지난해 14만4947대로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국내 자동차 시장 추세가 지속되는지에 따라 BYD의 국내 돌핀 출시 여부도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필수 교수는 "돌핀은 비야디의 기본 기종으로 가격을 낮추려고 옵션이 빠지면 사양이 떨어지는 데다, 국내 해치백에 관한 부정적 시각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BYD코리아가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며 "세계 시장에서 이미 입증된 아토3로 국내 시장 반응을 살피면서 돌핀도 옵션을 추가해 국내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