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재 기자 rsj111@businesspost.co.kr2025-01-16 14: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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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고려아연 임시주총을 일주일 앞두고 경영권 분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집중투표제’ 관련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두고 모두 '소수주주 보호'를 이야기하면서도 정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을 놓고 의결권 자문사에서 엇갈린 의견을 내고 있다. 사진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이같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법개정안 처리가 임박하자, 집중투표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논리의 적실성에 대한 관심이 정치권으로까지 옮겨가는 중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총의 첫 번째 안건으로 상정된 집중투표제를 놓고 국내외 자문기관 의견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기관으로 꼽히는 ISS와 글래스루이스부터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ISS는 10일 고려아연 의안분석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에게 유리한 제도지만 이번에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최윤범 회장 측이 지지하는 이사 후보를 선임할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ISS는 “집중투표제 도입은 유상증자에 관한 불만을 품은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사후 조치로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0월 공개매수를 진행한 뒤 2조5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해 비판 받다 철회했는데 이를 비판하며 MBK·영풍 연합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반면 글래스루이스는 14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의안분석보고서를 기관투자자들에게 전달했다.
글래스루이스는 “최 회장을 포함한 현 경영진이 유상증자 계획을 세웠다가 시장의 비판을 듣고 곧바로 철회했다”며 “집중투표제 도입과 독립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을 제안하는 등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풍·MBK 측을 놓고는 “영풍의 경영 논란이 해결되지 않았고 영풍과 고려아연의 다른 소수주주 사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지 의문이 있다”며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권리를 보호하고 이사회 구성에 관해 주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고 바라봤다.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도 해외기관과 마찬가지로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서스틴베스트, 한국ESG평가원 찬성 입장을 나타냈고 한국ESG기준원은 반대를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경영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며 “고려아연은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지만 경영진을 교체할 정도로 심각한 결격사유로 보기는 어렵다”며 최 회장 손을 들어줬다.
한편 한국ESG기준원은 14일 고려아연 의안분석보고서에서 “고려아연이 애초 정관에서도 배제한 집중투표제를 갑자기 도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며 “소수주주권 보호 취지에 부합하기 어렵고 최 회장 측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소수주주 보호를 위해 집중투표제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과 집중투표제가 특정주주를 위해 악용돼 소수주주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의견이 부딪히고 있는 것인데 고려아연의 특수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분야 글로벌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집중투표제 도입은 지배구조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집중투표제는 회사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상법 제382조의2에 명시돼 있다.
소수주주는 부여받은 의결권을 1명 또는 여러 명에게 집중적으로 몰아줄 수 있어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소유구조에서도 원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밀어넣을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을 구조를 보면 MBK·영풍 측이 40.97%를 보유하고 있고 최 회장 측이 약 34%를 확보한 것으로 추산돼 양측 지분 차이는 약 7%포인트 정도로 추정된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고려아연 측은 원하는 인사를 사내이사로 선임해 MBK·영풍 측의 경영 전반에 견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MBK·영풍 연합은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방식 이사선임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7일 첫 심문을 진행하는데 업계에서는 심문 이후 곧바로 주총이 열리는 만큼 결과가 빠르게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 등으로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도입되지 못하면 MBK·영풍연합이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권 분쟁을 승리로 가져갈 수 있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고려아연 인사가 이사회에 포함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
최 회장이 MBK·영풍 연합의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 국민연금이 17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 주총 안건의 의결권 행사 방침을 정한다.
국민연금의 선택도 큰 관심사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임시주총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17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고 이번 안건의 의결권 행사 방침을 정한다. 국민연금은 한국ESG기준원과 한국ESG연구소와 의결권 관련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관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낸 만큼 국민연금의 선택이 더욱 주목되는 셈이다.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는 시장의 큰 관심을 받으며 결과에 따라 향후 상법 개정안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등을 뼈대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재계와 시민사회 등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이달 말 상법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통과시킨 뒤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상법개정안 관련 공청회을 열어 학계와 재계의 의견을 들었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상법개정안을 두고 입법 취지대로 주주의 이익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감과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며 “조항이 수정되거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의석 수 등을 고려하면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