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10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카운티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 참여해 지지자들을 돌아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을 앞두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친환경 관련 정책들을 철폐하고 화석연료 채굴을 늘리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여론과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 당선인이 계획을 그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전략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GSCC)’는 14일(현지시각) 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향후 기후정책 및 외교 상황을 분석하는 미디어 브리핑을 열었다.
GSCC는 기후, 에너지, 환경 관련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소통하는 국제 네트워크로 한국에서는 기후미디어허브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이번 미디어 브리핑에는 프란시스 콜론 미국 진보센터 국제정책 수석 디렉터, 팀 사하이 존스홉킨스대 글로벌넷제로산업연구소 공동 디렉터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첫 번째 임기 때와 비교해 변화한 국내 여건을 들어 트럼프 당선인이 최근까지 주장한 대로 IRA를 폐지하고 화석연료 채굴을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콜론 수석 디렉터는 “미국은 현재 지역 커뮤니티, 주 정부, 기업 등이 에너지 전환과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이행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연방 정부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봤을 때 미국은 친환경 전환을 이어갈 의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 미국 정부는 IRA를 통해 마련한 세액공제를 모두 지급한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권이 자금을 회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하이 공동 디렉터는 “IRA로 지급되는 세액공제가 없어졌을 때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많은 불확실성이 초래될 것”이라며 “IRA가 철폐된다면 바이든 정부에서 리쇼어링에 성공한 일부 제조업들이 다시 국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는 좋지 못한 일인데 여기에 관세 문제까지 겹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IRA 혜택을 받는 많은 공화당 주와 정치인들이 폐지를 반대하고 있고 이들의 이권 보호를 위한 로비활동이 차기정권 내에서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내가 취임하는 날 곧바로 민주당의 녹색 사기 행각을 끝내겠다"며 "회수한 자금은 우리가 실제로 필요한 곳으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도 여러 차례 기자회견과 공식연설 등을 통해 IRA를 폐지하고 미국의 에너지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화석연료 채굴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를 실천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설치한 해상시추 금지구역들을 모두 철폐해 석유기업들의 활동범위를 넓혀줄 것이라는 구체적 방안도 내놨다.
▲ 캘리포니아주 실비치 앞바다에 위치한 해상시추선 '에스더'. <연합뉴스> |
콜론 디렉터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 지역 주민들은 해상시추에 호의적이지 않다”며 “대표적으로 플로리다 주민들은 인근 해역 시추에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내법상 미국 대통령은 임의로 해상시추 금지구역을 해제할 수 없다.
2019년 미국 연방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통령은 1953년에 제정된 ‘외부 대륙붕 토지법(OCSLA)’에 의거해 해상시추 금지구역을 설정할 수 있지만 이를 해제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 법안을 제정해 해제를 추진해야 하는데 지역 주민 여론을 고려해야 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쉽사리 찬성표를 던지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다.
콜론 디렉터는 “미국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는 국내 시추 금지구역에서 시추활동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라며 “안 그래도 의회를 통하지 않고는 금지구역 철폐가 어려운 실정인데 트럼프가 추진하는 전면 폐지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도로 에너지 관련 정책과 달리 기후와 환경 피해와 관련된 미국인들의 민생은 전반적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환경 규제 관련과 재해 지원 문제는 연방정부 권한 내에 있기 때문이다.
콜론 디렉터는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화재 사태만 보더라도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필요한 지원을 다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와 트럼프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이권의 관점에서 재해 대처를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며 “2017년에 발생한 허리케인 사태 때도 그는 피해 대처를 서두르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늑장을 부렸고 그 결과에 따른 피해는 미국인들이 고스란히 입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콜론 디렉터는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트럼프 집권은 미국 시민들에 있어 재앙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라며 “미 국민이 앞으로 체감하는 기후영향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