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상무부가 13일(현지시각) 발표한 AI 반도체 수출통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를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에만 제한 없이 판매하는 수출 통제 정책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사업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미국산 AI 반도체를 제한 없이 수입할 수 있는 동맹국에 해당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미국 AI 반도체 기업에 공급하고 있어, 이번 조치로 HBM 판매 확대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가 13일(현지시각) AI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의 국가별 수출 한도를 설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출 통제를 발표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 내용의 핵심은 중국·북한·러시아 등 20여 우려국가에 대해선 수출을 전면 차단하고, 한국을 포함한 20개 동맹국에 수출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또 AI 반도체가 수입돼 우려국으로 흘러갈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중간지대 120여 국가들에는 AI 반도체를 제한된 할당량만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미국의 수출 통제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출 통제 대상인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지만, ‘보편적으로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지위를 획득해 미국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업부 측은 “미국이 국가 안보적 관점에서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조치로, 기본적으로 한국이 면제 국가에 포함된 만큼 우리 기업, 기관 또는 개인이 미국으로부터 첨단 AI 칩·모델을 수입하는 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엔비디아나 AMD의 AI 반도체 수출에 제약이 생기면, 미국 AI 반도체 기업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판매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2024년 4분기(8~10월) 전체 매출의 약 17%를 AI 반도체 수출 금지국인 중국에서 올렸다.
로이터는 반도체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 정부의 AI 칩 수출 규제로 엔비디아는 새로운 수익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미국 정부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는 국내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에 단기적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과적으론 중국 반도체 산업 추격을 막아 반사혜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
이번 수출 통제로 싱가포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120여개 국가는 AI 반도체 허가 할당량만큼만 수입할 수 있게 돼, 엔비디아 등 미국 AI 반도체 기업들은 물론 이들에 HBM을 공급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 판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드 핀클 엔비디아 부사장은 이날 회사 공식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규제는 미국의 국제 경쟁력을 약하게 만들고, 미국이 어렵게 얻었던 기술 주도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이 이번 조치의 핵심 대상국으로 삼고 있는 중국의 AI 반도체 시장의 축소는 한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에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이 막힌다는 것은 결국 국내 기업의 미래 먹거리가 사라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가 국내 기업에 복합적 영향을 주는 만큼, 그 결과를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HBM 수출 측면에서만 보면 타격을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굴기도 악영향을 받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D램 창신메모리(CXMT)는 저가 DDR4 D램을 대량 공급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늘렸고, 최근엔 DDR5 D램과 HBM까지 개발해 양산에 들어갈 예정인 등 중국 메모리반도체가 한국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이종훈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국 시장을 잃게 되는 것은 국내 기업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미국의 조치로 최근 빠르게 커지고 있던 중국 메모리, 파운드리, AI 반도체 산업은 성장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