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1-10 15: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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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이 프리미엄 뷰티 플랫폼 '알럭스'를 별도 앱으로 분리하며 고급화 전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챗GPT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프리미엄 뷰티 플랫폼 ‘알럭스(R.LUX)’를 앞세워 럭셔리 뷰티 시장의 문을 두드린 지 100일이 지났다.
김 의장이 알럭스를 내세운 것은 고급 이미지가 약하다는 쿠팡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됐는데 실제 고객에게 긍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빠르고 간편한 선물 플랫폼으로 입소문을 타며 고객을 끌어모았지만 정작 명품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희소성’과 ‘고급감’이라는 감성적 가치를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유통업계 관계자 얘기를 종합하면 쿠팡이 알럭스 플랫폼을 출시한 지 100일이 되면서 쿠팡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럭스는 지난해 10월2일 출범한 쿠팡의 신생 서비스다. 기존에 '쿠팡럭셔리'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던 서비스가 이름을 바꾸면서 입점 브랜드를 확대해 고객에게 새로 선보였다.
쿠팡이 알럭스에 힘을 줬다는 사실은 독립 앱을 내놨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쿠팡이 독립 앱으로 운영하고 있는 플랫폼은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와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쿠팡플레이 등 2개였다. 여기에 알럭스까지 별도 앱으로 분리해 선보였다는 것은 그만큼 알럭스를 별도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범석 의장은 쿠팡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에 '고급' 이미지까지 얹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그동안 성과는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급 이미지를 줄 수 있는 패션과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지 오래지만 소비자 사이에서는 '공산품을 싸게 파는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실용적이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플랫폼이지만 김 의장이 추구하는 고급화 전략을 이식하기에는 쿠팡이라는 플랫폼이 한계를 가졌던 것도 명확하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결국 알럭스를 별도 앱으로 내놓은 것은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주기에 쿠팡이라는 플랫폼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의장의 선택은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알럭스는 격식이 중요한 ‘선물용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알럭스 내 제품 후기를 보면 인기 브랜드의 경우 2천~3천 개의 리뷰가 달리며 빠른 선물 서비스와 고급스러운 포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품질이 보장된 제품을 간편하게 선물할 수 있어 좋다”는 이용자들의 후기도 눈에 띈다.
다만 독립 앱 출시를 통해 노렸던 고급화 이미지 구축 전략을 놓고는 다소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선물 플랫폼으로는 통했지만 고급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먼저 사용하고 싶어하는 앱으로 자리잡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우선 앱의 사용률이 적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알럭스는 독립 앱으로도 사용 가능하지만 쿠팡 앱의 알럭스 카테고리를 통해서도 접속할 수 있다. 독립 앱은 애플 앱스토어에서만 내려받을 수 있으며 안드로이드 버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알럭스 앱의 리뷰는 고작 27개에 그친다. 앱을 내려받은 고객 수가 적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 알럭스의 구매후기를 살펴보면 별도 앱보다는 쿠팡 앱의 알럭스 카테고리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알럭스 앱에 대한 리뷰는 27개에 불과하지만 알럭스 내 인기 제품의 후기는 2천 개가 넘는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별도 앱이 아닌 쿠팡을 통해 알럭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는 김 의장이 별도 앱 분리를 통해 노렸던 고급 이미지 구축이라는 목표가 실제로 시장에 뿌리내리지는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진다.
100일이 지나도록 안드로이드 앱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가 활발했다면 안드로이드 버전 출시도 이미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급 뷰티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 역시 보완해야할 지점으로 거론된다.
▲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지속적으로 고급화 전략을 추진하며 다양한 전략에 대한 방향성을 열어두고 있다. <쿠팡>
알럭스 앱 리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빠른 배송’과 ‘편리함’이다. 김 의장이 그리고자 한 ‘럭셔리’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실제 오픈서베이의 ‘온라인 쇼핑 트렌드 리포트 2024’에서도 쿠팡의 주요 만족 요소는 빠른 배송, 합리적인 교환·환불, 포장 및 배송 상태였다. 상품의 품질이나 이미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SSG닷컴이나 롯데온 같은 백화점 연계 플랫폼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이들 플랫폼은 위수탁 거래가 많아 쿠팡처럼 빠른 배송은 힘들지만 샤넬·디올·에르메스·입생로랑 같은 쿠팡이 아직 손에 쥐지 못한 명품 뷰티 브랜드들을 꽉 잡고 있다.
알럭스가 내세우는 강점은 본사 정품 보장, 와우 회원 혜택, 로켓배송의 편리함이다. 다른 플랫폼과 실질적 차별점은 사실상 로켓배송 하나뿐이다.
문제는 고가 화장품이 급하게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굳이 하루 만에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제품에 로켓배송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다만 김 의장이 알럭스를 쿠팡과 분리해 독립 앱으로 출시했다는 점을 볼 때 프리미엄 뷰티 시장 공략에 대한 진심이 강하다는 차원에서 앞으로 서비스를 보완해나갈 여지도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다.
김 의장이 최근 IT 트렌드와 반대로 앱을 분리했다는 점은 쿠팡의 ‘고급화’에 대한 절박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모든 기능을 하나로 모으는 ‘슈퍼 앱’이 대세인 상황에서 특정 사용자 그룹을 겨냥해 별도 플랫폼을 운영하는 멀티 앱 전략은 자원 분산으로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 슈퍼 앱 전략을 택한 토스가 개별 앱으로 나뉜 금융사들을 압도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쿠팡의 ‘고급화’ 시도는 김범석 의장의 오랜 고민이 담긴 결과물로 보인다. 이미 3천만 명이 넘는 고객을 쥐고 있는 만큼 이제는 새 얼굴을 들이기보다 기존 고객의 지갑을 더 많이 열게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
2024년 디자이너 브랜드 플랫폼 ‘C.스트리트’ 개설, 2023년 명품 이커머스 ‘파페치’ 인수, 2020년 패션 브랜드숍 ‘C.에비뉴’ 론칭까지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오랜 기간 이어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알럭스라는 새 이름표를 단 지 3달 남짓 된 시점에서 알럭스의 성공 여부를 단정 짓기에는 섣부르다는 시각도 있다.
향후 안드로이드 버전까지 출시를 확대하고 인지도를 끌어올린 뒤 쿠팡이 아닌 알럭스 앱 자체 고객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전략을 펼친다면 쿠팡의 꼬리표를 떼고 독자적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