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증권거래소 거래 시스템 화면에 모간스탠리 로고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미국 주요 은행들이 자국 정치권의 압력으로 국제 기후대응 협의체에서 모두 탈퇴하며 글로벌 기후대응을 향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탈퇴한 주요 은행들은 모두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화석연료 투자 비중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트럼프 정부의 친화석연료 성향을 고려하면 금융권의 화석연료 투자가 늘어나 에너지 관련 기후대응에 큰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현지시각) 로이터는 유럽연합(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에서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미국 기후대응 축소를 향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붑커 훅스트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기후위원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미국 파리협정 탈퇴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는 국제 기후외교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파리협정은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과정에서 기후변화를 “사기”라며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도 “녹색 사기 행각”이라고 주장해왔다. 여기에 글로벌 기후대응에 있어 핵심이라 불리는 ‘파리협정’에서도 탈퇴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파리협정은 세계 각국이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아래로 억제하자고 협의한 조약을 말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번째 임기 때도 미국을 파리협정에서 탈퇴시킨 바 있다.
가디언은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로 인한 영향이 미국 금융권에서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간 체이스,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간스탠리, 씨티그룹 등 미국의 주요 대형 은행들이 지난 몇 주에 걸쳐 모두 ‘넷제로은행협의체(NZBA)’에서 연이어 탈퇴했기 때문이다.
NZBA는 2021년 유엔 주도하에 결성된 협의체로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과 화석연료 투자 축소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지난 6일(현지시각) JP모간 체이스 은행의 탈퇴 발표로 이제 NZBA에 남아있는 미국 주요 은행은 단 한 곳도 없게 됐다.
이에 패디 맥컬리 리클레임파이낸스 선임 애널리스트는 가디언을 통해 “미국 대형 은행들의 갑작스러운 이탈은 트럼프와 그 일당들로부터 비판을 피하기 위한 얄팍한 수”라며 “몇 년 전에 미국 정치권이 기후변화 대응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을 때 이들 은행은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이제는 기후변화가 무시당할 처지에 처하니까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고 비판했다.
NZBA에서 탈퇴한 은행들은 모두 공식성명을 통해 협의체에서는 탈퇴했으나 기후대응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본 규모가 큰 미국 은행들의 이탈과 현재 이들의 화석연료 투자 비중을 고려하면 향후 글로벌 금융권의 기후대응 노력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장 마르틴 책임투자단체 ‘셰어액션’ 뱅킹프로그램 대표는 로이터를 통해 "(미국 주요 은행들의 탈퇴는)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화석연료 투자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미국 뉴욕주 뉴욕시에 위치한 씨티은행 본부. <연합뉴스> |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이 발표한 ‘2024 기후혼돈을 가중시키는 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JP모간 체이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3년 기준 화석연료 투자액이 가장 높은 은행들이었다.
이번에 NZBA에서 탈퇴한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등도 같은 보고서에서 모두 20위 안에 들어 있었다.
시에라클럽은 보고서를 통해 “파리협정 이래 상위 10개 은행이 은행권의 화석연료 투자에서 차지한 비중은 무려 56%에 달한다”며 “이들 은행은 이미 취약한 기후대응 관련 정책들을 되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주요 은행들이 이번에 연이어 탈퇴한 원인이 금융권의 화석연료 투자 감축과 관련한 공화당의 정치적 압박이었던 만큼 이들 은행은 향후 관련 투자를 늘릴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6일(현지시각) NZBA 소속 주요 은행들을 대상으로 감사와 소송 등을 예고했던 텍사스주는 JP모간 체이스 탈퇴 발표 직후 월가 은행들을 대상으로 한 법적 행동을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NZBA는 우리의 매우 중요한 천연가스와 석유 산업을 저해하고자 했다”며 “여기에 가입해 있으면 텍사스주 내 투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치권은 NZBA 외에도 다른 글로벌 기후대응 협의체들을 향한 공세도 강화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반경쟁적인 담합 행위에 참여하는 기후 금융 카르텔이 형성됐다는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여기에는 글래스고 넷제로금융연합(GFANZ) 등 다른 협의체들이 참여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3일(현지시각) GFANZ는 회원 자격과 관련된 기후목표 수립 요건들을 대폭 완화한다는 발표를 내놨다. 기존에는 파리협정 경로를 완벽하게 준수하는 은행과 금융사들만 회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사싱상 이를 폐기한 것이다.
GFANZ는 공식성명을 통해 "우리는 기후대응을 위해 최대한 가용 가능한 민간 자본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이에 우리는 모든 금융기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