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의 테슬라 공급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테슬라 슈퍼컴퓨터 ‘도조’에 들어갈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수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도조에 들어가는 HBM 용량은 상당한 물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테슬라는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등으로 인공지능(AI) 활용처를 확대하고 있어 앞으로 엔비디아, AMD에 이은 대형 HBM 수요처로 부상할 전망이어서 두 회사는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와 손잡고 빠른 HBM4 양산을 통해, 삼성전자는 2나노 첨단공정을 선제적으로 활용해 HBM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30일 미국 IT매체 테크레이더, 테크스팟 등에 따르면 테슬라가 슈퍼컴퓨터 ‘도조’에 들어갈 HBM4 샘플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요청, 이르면 2025년 3월 샘플이 전달될 것으로 예상된다.
HBM4는 기존 HBM3E 대비 속도가 1.4배 향상되고 전력소모량은 7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6세대 HBM이다. 범용성에 초점을 맞춘 이전 제품들과 달리 고객사 요구에 대응해 맞춤형 제품으로 생산된다.
테슬라는 슈퍼컴 ‘도조’의 성능 향상을 위해 HBM4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조는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수집하는 데이터와 영상자료를 활용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훈련하는 AI 슈퍼 컴퓨터다. 향후에는 테슬라 ‘옵티머스’ 로봇의 AI 훈련에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운영되는 도조에는 HBM2E가 탑재돼 있는데, 테슬라는 도조의 데이터 처리 향상, AI 훈련 최적화, 자율주행 고도화를 위해 HBM4로 단계적 업그레이드를 추진한다.
기본 도조 V1 시스템에는 13테라바이트(TB) 용량의 HBM2E가 탑재됐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출시한 슈퍼컴퓨터 ‘DGX GH200’에 24TB의 HBM이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향후 테슬라의 자체 AI 칩 개발과 자율주행차 생산 확대를 고려한다면 HBM 구매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향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율주행용 슈퍼컴퓨터 외에도 AI 서비스를 위한 xAI용 서버 구축을 위해 HBM을 대량 구매할 가능성도 높다.
테크레이더는 “테슬라가 HBM4 확보 측면에서 AMD와 엔비디아의 놀라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며 “HBM4 칩은 첨단 AI를 향한 테슬라의 야망을 실현하는 데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HBM4 경쟁에서 아직은 SK하이닉스가 근소한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세대 HBM인 HBM3E 양산이 가장 빨랐던 데다가, HBM4 양산 시점도 당초보다 앞당겨 이르면 2025년 3분기 전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조 AI 칩 자체가 대만 TSMC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을 활용해 제조되는 만큼, TSMC와 동맹 관계에 있는 SK하이닉스가 수주전에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 HBM4의 로직다이 제조는 TSMC 3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것이 유력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하이브리드 본딩 등 첨단 패키징 공정을 도입해 경쟁우위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적층하는 D램 사이의 ‘범프’ 없이 직접 연결하는 기술로, 발열 개선과 성능 향상이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HBM4 16단 제품부터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4E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는 HBM4에서 경쟁사가 1b(12~13나노) 공정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1c(11~12나노) 공정을 활용해 미세공정 기술 측면에서 앞서가는 길을 택했다. 새로운 공정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역전을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에이브릴 우 트렌드포스 시니어 리서치 부사장은 지난 10월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가 HBM4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1c D램’ 공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BM4는 기존 엔비디아나 AMD 외에 테슬라, 브로드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다양한 빅테크가 요구하는 맞춤형 반도체(ASIC)를 중심으로 더욱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빅테크는 더 이상 단순히 HBM을 구매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AI 칩과 워크로드에 최적화한 메모리를 직접 설계·주문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며 “HBM4부터는 맞춤형 HBM 설계 제작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