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은 연초부터 홍콩 H지수 기반 ELS 대규모 손실로 큰 신뢰도 위기를 겪었다. 홍콩 ELS 사태 피해자들이 1월19일 서울 영등포 금융감독원 앞에서 보상을 촉구하며 삭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2024년 은행권은 내부통제로 시작해 내부통제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초부터 불완전판매에 따른 주가연계증권(ELS) 사태가 발생했고 하반기에는 우리은행에서 내부통제 총책임자인 지주 회장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면서 ‘1금융권’을 향한 소비자 신뢰가 뒤흔들렸다.
은행권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역대급 순이익을 거둬 ‘상생금융’ 압박을 받았다.
은행권은 상반기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높은 대출금리로 이자이익을 늘렸고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흐름 속에서는 가계대출 규제를 이유로 금리를 더디게 내리며 수익성을 방어했다.
이에 이자장사 비판을 받았고 결국 연말 상생금융 시즌2로 이어졌다.
동시에 대환대출과 퇴직연금 이동 등 '갈아타기' 시장이 활짝 열리며 인터넷은행뿐 아니라 증권사와 보험사 등 다른 금융업권과 경쟁하며 강한 변화를 요구받았다.
26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에서 제기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및 소 제기 건수는 7476건으로 집계됐다.
2019년부터 2023년(9월 말 기준) 평균인 690건의 10배 수준으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있었던 2020년(1103건)도 크게 웃돌았다.
은행권 신뢰도가 도마 위에 오른 셈인데 시작은 올해 초 대규모 손실을 일으킨 홍콩 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 사태였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50대 중국 기업을 추려 산출하는 H지수는 기반이 탄탄해 손실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소비자들은 ‘1금융권’인 은행에서 판매한 상품인 만큼 예금 수준의 안정성을 기대하고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H지수는 연초에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고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ELS는 어디까지나 고위험 파생상품이었지만 일부 은행은 고령의 치매 환자에게도 H지수 ELS를 권유하는 등 불완전판매로 의심되는 다양한 사례도 대거 드러났다.
홍콩 H지수 사태는 금융당국의 압박과 은행권의 선제적 보상 조치로 일단락 됐지만 은행권 신뢰에 큰 타격을 줬다.
사태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11월 기준 피해 계좌 90% 가량의 배상이 마무리됐지만 일부 피해자는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LS 사태가 은행이 고객을 상대로 하는 외부 영업에 의구심을 품게 했다면 은행권의 내부 체계가 허술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금융사고도 이어졌다.
우리은행에서는 6월 한 지점 30대 대리가 서류조작을 통해 180억 원 가량을 빼돌린 사건과 8월 전임 회장 관련 부당대출 건이 적발됐다. NH농협은행에서도 여러 차례 횡령 등 금융사고가 확인됐다.
은행권이 2022년 700억 원대 횡령 사건, 2023년 수천억 원대 횡령 사건과 불법 주식 선행 매매, 허위 증권 계좌 개설 등 숱한 금융사고를 겪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부통제 총책임자인 금융지주 회장이 연루된 사건이 터지며 개별 은행뿐 아니라 은행권 전체의 신뢰를 더욱 악화시켰다.
▲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정책에 따라 실수요자 혼란만 커진다는 지적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9월4일 서울 영등포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
은행권은 이 가운데 금융당국 목소리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 소비자 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도 맞아야 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중순 가계대출 증가세를 경계하며 은행권에 엄정 관리를 당부했다. 5대 은행은 이에 따라 7월과 8월에만 20여 차례 대출금리를 올리며 가계대출 관리에 공을 들였다.
다만 실수요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간담회를 열고 피해 최소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은행권은 급증한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연말까지 대출 취급 자체를 줄여 둔촌주공 등 입주를 앞둔 실수요자 불만을 키웠다.
은행권은 이같은 상황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쓰며 상생금융 압박을 받았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은 올해 연결기준 순이익(지배주주)으로 16조7089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지주별로 ELS 사태 비용을 많게는 수천억 원을 반영했지만 역대 최고 실적을 새로 쓰는 것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12월 초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실물경기는 내수 부진 영향으로 체감 경기가 상당히 좋지 않지만 은행권 실적은 상대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사회적 역할 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간담회에서 민생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
은행권은 23일 결국 연간 7천억 원 규모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민생금융지원 방안을 내놨다. 지난해 제시한 2조 규모의 방안과 달리 이번 ‘시즌2’는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시장에서는 은행 본연의 역할인 자금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경기 침체에 돈이 돌지 않는 만큼 은행이 적재적소에 자금이 흘러가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최근 “대내외 여건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다”며 “정책금융기관과 더불어 시중은행은 자금지원 방식을 가계·부동산 대출 중심에서 기업성장자금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올해 손쉽게 은행을 갈아탈 수 있는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서비스가 활짝 열린 점도 은행권의 큰 변화로 여겨진다.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은 지난해 신용대출에 이어 올해 주택담보대출와 전세대출로 확대됐고 인터넷은행은 무점포 영업에서 나오는 금리 경쟁력을 토대로 급성장했다. 인터넷은행 3사는 올해 3분기까지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이에 더해 올해 퇴직연금 갈아타기 시장도 열리면서 증권사와 보험사 등과 더욱 강한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술발전과 금융소비자 수요에 따른 갈아타기 시장 활성화에 속도가 붙고 있는 만큼 은행권은 내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부통제는 언제나 강조됐지만 올해는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한 해였다"며 "대환대출 활성화나 퇴직연금 갈아타기는 경쟁업권을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있고 기준금리 인하로 수익성 하락도 전망되고 있어 내년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