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시장에서 해외주식형 순자산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5년에는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과 한국 증시 불확실성 등으로 해외 투자 선호 현상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도 신상품 무게 중심을 해외상품에 두며 ‘서학개미’ 유치에 힘을 싣고 있다.
▲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시장에서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총액이 40조 원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국내주식형을 앞질렀다. 사진은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 AP >
17일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13일 기준 국내 ETF시장 규모가 172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총액은 39조9660억 원에 이른다.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은 12월 들어서만 3조3천억 원가량 증가하면서 국내주식형 ETF 순자산(36조8226억 원) 규모를 앞질렀다.
2023년 말 기준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 규모가 23조7524억 원으로 국내주식형(45조2151억 원)의 절반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급격한 성장세다.
해외주식형 ETF는 올해 들어 순자산이 68.2% 증가했다. 2024년 전체 ETF시장 성장률(42.2%)을 훌쩍 웃돈다.
미국과 국내 증시의 엇갈린 움직임이 ETF 순자산 규모도 가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시는 S&P500지수를 기준으로 볼 때 올해 30% 가까이 오르면서 고공행진한 반면 한국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드물게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주식형 ETF는 여러 종목을 한 바구니 안에 담아 놓은 것으로 기본적으로 주가가 빠지면 순자산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해외 증시 투자에 개인투자자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계엄사태에 따른 국내 증시 이탈 추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ETF시장은 올해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주식형 상품으로 자금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코스콤 ETF체크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해외주식형 ETF에는 투자금 15조1403억 원이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ETF에 순유입된 투자금 3조2989억 원의 4배도 넘는다.
2024년 수익률 상위 10위권도 전부 미국 증시와 빅테크기업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 휩쓸었다.
서학개미 열풍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빅테크TOP7 Plus레버리지(합성)’이 연초 이후 193.4% 올라 1위를 차지했고 레버리지 상품을 제외하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서학개미’가 98.84% 상승해 가장 많이 올랐다.
KODEX 미국서학개미는 이름 그대로 국내 투자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주식 25종목을 담고 있는 상품이다. 테슬라, 엔비디아부터 양자컴퓨팅기업 아이온큐,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기업 팔란티어, 비트코인 보유로 유명한 소프트웨어기업 마이크로스트래터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서학개미’ ETF는 2024년 들어 98% 수준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삼성자산운용>
자산운용업계는 2025년에도 해외주식형 ETF로 자금 쏠림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도형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투자는 결국 학습과 신뢰가 좌우하는데 최근 몇 년 미국 주식 ETF 수익률을 경험하면서 해외시장에 관한 신뢰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며 “금리와 경제성장 지표 등을 고려할 때도 미국 증시를 선호하는 투자 트렌트가 쉽게 꺾이지 않고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애초 자국 시장에 치중하는 ‘홈바이어스(home bias)’ 성향을 보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추세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남용수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운용본부장은 “해외 특히 미국 시장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빅테크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는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연금계좌에서 미국 투자, 적립식 미국 주식 투자 추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들은 올해 투자자들의 수요를 반영해 해외주식형 ETF 상품을 크게 늘렸는데 2025년에도 이런 방향성을 유지할 것으로 파악된다. 자산운용사 점유율 경쟁에서도 ‘서학개미’ 자금 유치가 핵심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 전략도 세분화하는 추세다.
기존 S&P500 등 미국 증시 대표지수를 따르는 ETF에서 나아가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전력인프라까지 다양한 성장산업분야에서 점점 더 다양한 상품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2024년 11월 말 기준 국내 ETF 상장 종목 929개 가운데 해외주식형 ETF상품은 292개(31.4%)에 이른다. 지난해 말(226개)과 비교해 상장 상품이 66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상품은 355개에서 371개로 16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정환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2025년에도 TIGER S&P500 ETF와 같이 장기적, 구조적 성장이 지속되는 시장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며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시프트)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을 비롯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보인 중국 등에 관심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