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 불확실성에 실손보험 개혁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은 지속적으로 악화해 2024년 상반기 누적 기준 131.4%를 기록했다. <보험연구원> |
[비즈니스포스트] 보험업계 핵심 추진사항으로 논의되던 근본적 실손보험 개혁이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휩쓸려 물 건너갈 위기에 처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손보험의 상품 약관 등이 개편된다 해도 손해율 개선의 핵심인 비급여치료 관련 사안을 논의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사실상 중단돼 반쪽짜리 개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제5차 보험개혁회'에서 실손보험 개혁방안 등을 논의했다.
금융위는 이날 회의에서 논의된 안건을 종합해 실손보험 개혁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구체적 발표 시기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개편안에는 실손보험을 구성하는 급여 및 비급여 진료 항목과 관리체계, 소비자의 자기부담금 관련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는 손해율 관리 측면에서, 소비자는 보험료 인상 및 보장 내용 변경 가능성과 관련해 개혁 추진 방향성을 주목하고 있다.
실손보험은 크게 3차례에 걸쳐 개편돼 가입 시기에 따라 1~4세대로 분류된다. 현재 판매되는 실손보험은 4세대다.
4세대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을 보완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유지한다는 목표 아래 2021년 7월 출시됐다.
실손보험 가입은 꾸준히 늘어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4세대 실손보험 가입 건수는 376만 건으로 전체 실손보험의 약 10.5% 수준으로 나타났다.
최근 논의되는 실손보험 개편의 핵심 쟁점은 과잉진료 유인 감소와 손해율 관리다. 높은 손해율의 원인으로 비급여 항목 과잉진료가 꼽히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은 2021년 61.2%에서 올해 상반기 131.4%까지 높아졌다. 100%를 웃도는 손해율은 그만큼 보험사가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높아진 손해율을 감당하지 못하면 보험사는 보험료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어 실손보험 손해율은 전체 보험 가입자에게 영향을 준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건강보험 지속성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실손보험 지급보험금은 증가세에 있으며 이 가운데 비급여 의료가 약 60%를 차지한다”며 “비급여항목의 과잉 이용이 손해율 악화의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 개편은 상품 개선뿐 아니라 과도한 비급여 의료이용 자체를 제어하기 위해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진행됐다.
하지만 계엄 사태 뒤 대한중소병원협회와 국립대학병원협회, 대한병원협회 등이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이탈하고 위원회 운영이 멈추며 의료계와 협업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실손보험 및 비급여 개선안 발표와 관련해 "올해 안에 위원회에서 뭔가 한다고 얘기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애초 연말 비급여·실손보험 개선안 등 2차 의료개혁 실행 방안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9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실손보험 개혁 등 12월 안에 발표하려던 경제 대책을 일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9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실손보험 개혁 등 12월 안에 발표하기로 한 대책도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비급여 개선을 포함한 의료개혁 없이는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보험사들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이날 오후 진행되는 보험개혁회의에서 실손보험 개편 방향성이 어떻게 논의되느냐에 따라 맞춰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우선은 기존까지 진행하던 대로 실손보험 상품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정책 불확실성에 따라 의료개혁특별위원와 긴밀히 협력하던 부분을 온전히 담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외부 상황과 별개로 실손보험이라는 상품을 개편하는 건 보험업계 내부 이슈라고 볼 수 있다”며 “기존에 진행하던 방향대로 개선안이 나올 것으로 바라본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이번에 나오는 개선안을 4.5세대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그동안 실손보험 개편에 불신을 보여온 만큼 이번 개편이 반쪽짜리에 그칠 경우 실손보험은 소비자 신뢰 회복과 거리가 더욱 멀어질 수 있다.
소비자들은 2009년부터 계속 개편되는 실손보험 상품과 매번 변화하는 보장 및 자기부담금으로 혼란을 겪어 왔다.
실손보험은 2009년 처음 표준화를 위한 개편을 시작해 2009년 이전 가입 상품을 1세대, 그 2009년 9월~2017년 3월 가입 상품을 2세대, 2017년 3월~2021년 7월 가입 상품을 3세대, 그 이후를 4세대라고 구분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 관련 주요 민원 가운데 실손보험 가입 시기와 담보 유형(입원, 통원, 비급여) 등에 따라 적용되는 자기부담금(공제금액)이 달라 생기는 청구 관련 민원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어려운 상황일수록 개혁 기조는 확고히 유지돼야 한다”며 “보험개혁회의 과제들을 당초 계획과 일정에 따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김 부위원장은 실손보험 개혁에 대해서도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 핵심과제인 만큼 개혁 완수 의지를 표명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