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905년 을사년에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잃었다. 일본에서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했다. 5년 뒤 경술국치가 이어지지만 이때 나라를 사실상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종황제는 허울뿐이었고 무력했다. 대신들은 부패하고 무능했다. 나라는 어수선했고 백성들은 허탈한 슬픔에 빠져 있었다. 말 그대로 온 나라가 을씨년스러웠다.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
2025년 대한민국 을사년도 1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을씨년스러운 상황과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그때와 엇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윤석열 정부부터가 무능하다. 잘한 걸 꼽기가 힘들다. 이에 나라의 모든 일이 시나브로 무너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먹고 사는 문제부터 흔들린다.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잡아뒀는데 물 건너간 지 오래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을 2.2%로 최근 하향 조정했다.
2025년 전망은 성장률 더 어둡다. KDI는 2.0%, 한국은행은 1.9%로 전망했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내년보다 더 낮은 1.8%로 낮춰 잡았다.
1%대 저성장이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고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올해 주요 20개국(G20)의 평균치가 3%대 초반인 점을 생각하면 처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그나마 버팀목이 되던 수출 증가세마저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더 후퇴할 공산이 크다.
내수는 더 심각하다. 통계청이 내놓은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소비 상황을 보여주는 소매판매가 전달보다 0.4% 줄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 0.8% 줄어들어 4년여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내수 경기에 영향이 큰 건설업의 10월 생산은 전달보다 4.0% 줄었다. 6개월 연속으로 후퇴한 것인데 이는 2008년 1~6월 이후 16년4개월 만에 가장 긴 감소세다.
투자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10월 설비 투자는 전달에 비해 5.8% 줄었다. 이는 올해 1월(-9.0%) 이후 가장 크다. 같은 달 전산업 생산지수도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내려갔다. 한 마디로 생산과 투자, 소비가 모두 후퇴하고 있다.
무너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가 무너졌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내놓는 올해 언론자유도 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62위에 머물렀다. 가봉 같은 아프리카 군사독재 국가보다도 아래다. 전 국민이 알게 된 '입틀막(입을 틀어막음)'이라는 신조어가 참담하다.
의료도 불안하다. 정교한 공론화 없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다 '응급실 뺑뺑이'로 대변되는 의료대란을 불렀다. 이밖에도 법의 공정성, 선거의 정당성, 헌정 질서, 외교의 안정성 등 나라의 틀이 무너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과 관련한 주가조작 의혹과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 여론조작과 공천개입으로 요약되는 '명태균 게이트' 등등. 큰 문제만 해도 사례를 일일이 들기가 입이 아플 정도다.
여당 역시 한심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를 이끌어 국정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기보다는 대통령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많다.
더구나 이 엄중한 시국에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상호 비방글을 놓고 친윤(친
윤석열)계와
한동훈 국민의힘을 따르는 친한(친
한동훈)계 사이 다툼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 다수가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여론이 나오고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야당은 대여공세에만 열을 올릴 뿐 빈약한 정치력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3번이나 행사한 '김건희특검법안'의 재표결 통과에 필요한 국민의힘 8표도 설득하지 못하고 대치 정국을 이어갈 뿐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정치력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장구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로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국민들이 나서서 나라를 구했다. 을사늑약과 경술국치 뒤에도 비록 시간이 걸렸지만 치열한 독립운동을 통해 2차대전의 일제 패전과 함께 나라를 되찾았다.
2025년 을사년에도 믿을 건 국민들의 단결된 힘밖에 없을 듯하다. 천주교 사제 1466인의 시국선언문에 담긴 "우리는 뽑을 권한뿐 아니라 뽑아버릴 권한도 함께 지닌 주권자"라는 구절이 국민들의 분노 화덕에 장작을 넣는다.
연말연시 을씨년스러운 겨울,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다. 박창욱 정책경제부·글로벌&기후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