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셸레프테오에 위치한 노스볼트 배터리 제1공장 내부에서 임직원이 생산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노스볼트>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최근에는 생산 차질까지 겪고 있다.
노스볼트의 어려움이 지속하면 유럽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마련해 둔 한국 배터리 기업에 반사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21일(현지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노스볼트 자회사가 미국 텍사스주 파산법원에 ‘챕터 11’ 파산보호 절차를 신청했다.
미국 파산법에 근거한 챕터 11은 기업이 파산법원의 감독 아래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해 회생을 모색하는 제도다. 한국의 법정관리절차라 볼 수 있다.
노스볼트은 이번 조치를 통해 1억4500만 달러(약 2030억 원)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본사가 있는 스웨덴 공장에서만큼은 정상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임직원에 급여를 지급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자금난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스볼트가 제출한 신청서에는 “유동성 상황이 심각하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모국 스웨덴에서마저 노스볼트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만큼 자금난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된다.
에바 부쉬 스웨덴 부총리는 로이터를 통해 “스웨덴 정부가 노스볼트 지분을 매수하는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노스볼트는 테슬라를 다니던 전직 임원이 2016년 유럽 지역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배터리 선도업체 의존도를 줄인다는 목표 아래 설립했다.
이에 유럽연합(EU) 투자은행과 독일이 자금을 지원하고 현지 전기차 기업이 지분에 투자했다. 설립 당시 총 투자 규모는 150억 달러(약 21조 원) 수준이었다.
이후 폴크스바겐과 BMW 그리고 트럭기업 스카니아 등에서 배터리를 수주하며 ‘유럽 배터리의 희망’으로까지 불렸으나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노스볼트는 무리한 확장과 기술력 한계로 2023년 스웨덴 공장에서 전체 생산능력 16기가와트시의 1%를 밑도는 생산량만 달성했다.
올해 9월 초부터 11월10일까지 주당 생산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 문서도 로이터를 통해 알려졌다.
▲ 헝가리 괴드에 위치한 삼성SDI 배터리 공장의 2017년 시점 항공뷰. < 삼성E&A > |
가뜩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캐즘(대중화 이전 일시적 수요 둔화)이 나타나 배터리 수요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자금난과 더불어 생산 차질 문제까지 직면한 셈이다.
이런 상황은 유럽에 다수 생산 설비를 건립하고 현지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 중인 K배터리 3사에 반사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노스볼트가 배터리를 공급하는 폴크스바겐과 BMW 자동차 회사 다수가 K배터리 고객사이기도 하다.
BMW는 지난 6월 배터리 공급 지연을 이유로 노스볼트와 20억 달러(약 2조8045억 원) 규모 계약을 해지했다. 이 물량 가운데 일부가 기존 BMW 공급사인 삼성SDI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스볼트가 자금을 수혈하고 공장 가동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배터리를 납품받지 못한 전기차 고객사가 물량을 K배터리로 돌릴 공산이 크다.
삼성SDI와 SK온은 헝가리,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에서 각각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세 기업 모두 유럽에서 안정적으로 높은 매출을 올린다는 점도 노스볼트 고객사를 끌어올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이 가파르게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K배터리 3사는 유럽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노스볼트가 어려움을 겪으면 한국 기업이 일정 부분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스볼트는 2025년 1분기까지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기존 대출기관과 주주는 물론 새로운 투자사를 물색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노스볼트 지분 21%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 폴크스바겐에서도 노스볼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은행 한델스방켄의 햄퍼스 엔겔라우 분석가는 “노스볼트가 단기적으로는 자금 숨통이 틜 수는 있겠지만 미국에서 파산 신청은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분석했다.
결국 노스볼트가 전기차 캐즘을 넘지 못하고 자금난으로 파산하면 한국 배터리 기업이 현지 생산 거점을 활용해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욱 높일 공산이 커진다.
다만 배터리업계 일각에서는 노스볼트가 파산하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나온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