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가 중국산 철강 공세로 국내 철강업계가 위기에 직면했지만, 정부는 중국 눈치만 보는 등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사진은 경상북도 포항의 포스코 포항제철소 선재 공장 내부 모습. <포스코> |
[비즈니스포스트] 저가 중국산 철강 공세로 국내 철강업계가 위기에 직면하며,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주요 기업들이 제철소 폐쇄 조치와 감산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에 세계적으로도 철강 기업의 수익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저가 중국산 철강 제품 공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돼 피해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정부는 중국 눈치만 보는 등 자국 산업 보호 대책 마련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철강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포스코는 중국산 저가 철강 공세 등에 따른 실적 악화를 막기 위해 지난 19일 포항제철소 1선재 공장 폐쇄를 전격 결정했다. 이는 지난 7월 포항 1제강 공장 폐쇄에 이은 두 번째 셧다운이다.
현대제철도 최근 포항 2공장 폐쇄를 노조 측에 통보했다. 수요 저하로 감산 정책을 이어갔지만, 생산 효율화를 위해 가동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중국산 저가 공세에 국내 철강 업체들 실적은 대부분 크게 악화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5%, 77.5% 줄었다. 동국제강도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2.3%, 영업이익은 79.6% 줄었다.
포스코홀딩스의 3분기 철강 부문 영업이익은 46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4% 감소했다.
중국 철강 업체들은 2022년부터 시작된 자국 부동산 경기침체로 내수 수요가 감소하자, 해외로 저가에 철강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15만7800톤으로 전년 대비 7.35% 증가했다. 2022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80.5%나 늘었다. 중국산 후판은 국산 제품에 비해 약 15% 저렴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 충남 당진에 있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후판 생산라인 모습. <현대제철> |
보다 못한 현대제철은 지난 7월 중국산 저가 후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정부에 신청했다.
현대제철의 반덤핑 제소 신청으로 무역위원회는 지난 10월 예비 조사를 시작했지만, 본조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본조사가 시작된다고 해도 최종 반덤핑 관세 부과가 결정되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반덤핑 제소 외에 철강업계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실제 반덤핑 관세 부과 결정이 나기까지 국내 철강 업체들은 밀려드는 저가 중국산 철강재에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 잘못 대응하면 상대국과 관계가 나빠지거나 수요 업체, 공급망 등 여러 가지 고려할 것들이 많다"며 "실제 현대제철의 반덤핑 제소 이후 중국 내에서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황은 인지하고 있지만, 당장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반덤핑 제도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무너져가는 철강업계를 지켜야 하지만 중국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철강업계와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포스코, 현대제철, 세아홀딩스, KG스틸, 동국씨엠, 넥스틸, TCC스틸, 한국철강협회 등 국내 철강 기업들과 단체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하지만 간담회에서는 중국산 저가 철강 유입에 대한 대책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산업부는 이날 내년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이 한국 철강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을 뿐이다.
오히려 제철소를 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항시는 포항제철소 1선재 공장 폐쇄, 현대제철 2공장 가동 중단 등 지역 철강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 20일 긴급회의를 열었다.
시는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 국내 대기업 국산 철강 사용 할당제 도입, 전기료 인하, 중국산 후판 반덤핑 제소 신속처리 등 '철강산업 위기 극복 긴급대책' 마련을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 이강덕 포항시장이 지난 10월24일 경북 포항시청에서 열린 경북 시장군수협의회 정기회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강덕 포항 시장은 "지역의 주력산업인 철강산업이 대내외적인 여건으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정부 차원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철강업계는 정부가 반덤핑 조사에 앞서 잠정 관세를 중국산 철강재에 부과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잠정 반덤핑 관세란 반덤핑 조사가 개시된 후 최종 결론이 나기 전까지 임시로 부과하는 관세다.
예비조사 단계에서 덤핑 사실 또는 국내 산업 피해 관련해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경우,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실제 반덤핑 조사 기간에도 중국산 후판 수입이 계속되자 철강업계는 무역위원회에 잠정 반덤핑 관세를 건의하기도 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조사를 시작해도 현실적으로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조사 기간이 길어지니 잠정 관세라도 도입해 중국산 철강재 유입을 막아보려는 게 현실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