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11-18 15: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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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 추진에 대응하기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 대표는 '개미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국회 제1당 민주당을 압박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이끌어냈는데 민주당에서도 같은 명분을 들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10월4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에서 금투세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상법 개정의 공이 한 대표로 넘어온 상황에서 개미투자자 보호라는 명분과 경영상 부담을 들어 반대하는 재계 사이에서 한 대표로서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경제정책에서 금투세에 이어 국회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상법개정을 놓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10월 들어 상법 개정을 본격화한 뒤 지난 14일 이를 당론으로 확정한 가운데 국민의힘 내에서는 상법 개정에 부정적 기류가 강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 대표는 상법 개정에 여태껏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오랫동안 상법 개정 문제에 침묵을 지키는 이유를 놓고 그동안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며 꺼내든 '개미투자자 보호'라는 명분과 이를 위한 상법 개정을 사실상 반대하는 당의 입장이 충돌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무리한 상법 개정 추진을 일단 멈추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어떤 방식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기업 경쟁력을 제고할 지 심도 있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 움직임에 사실상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개미투자자 보호를 외치며 금투세 폐지에 앞장서 왔다
한 대표는 10월28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금투세 폐지를 촉구하며 “민주당이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미루는 동안 한국증시와 투자자들은 골병이 들고 있다”며 "국민과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라고 말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한 대표 주장을 수용해 금투세 폐지에 동의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월4일 최고위원회에서 "지금 현재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여기 투자하고 주식시장 기대고 있는 1500만 투자자 입장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금투세를 폐지하자는 국민의힘 주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금투세 폐지가 개인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상법개정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를 수용한 만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만큼은 반드시 관철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개정에 힘을 주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시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정한 뒤 12월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정기국회 안에 본회의를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상법 382조3항을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와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로 개정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회사에 국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일반주주로 확대해 이사회가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언주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회사가 대주주 입장만 대변해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해 주주 평등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되고 있다"며 "이는 사유재산보호라는 자본주의 기초 정신에 어긋난다"고 썼다.
다만 이를 재계에서 경영 상의 부담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한 대표의 결단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여당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재계 반대를 근거로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8단체는 14일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 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되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당이 주저하면서 상법 개정에 속도가 나지 않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기구인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주주 충실 의무 도입시 업 경영권 침해 여지가 많다고 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며 "상법 개정에 실패하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초대형 펀드를 포함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재계의 반대논리에 매몰돼 묻지마 반대를 해선 안된다"며 "국회는 반드시 후퇴 없는 상법 개정으로 재벌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와 금융당국 역시 상법 개정 취지에 일부 공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법원은 11일3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의견서에서 “(개정안은) 전체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과하려는 취지로서 그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11월13일 홍콩에서 열린 해외투자자 대상 투자설명회에서 "한국은 9월부터 12월까지 국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일정이 있기 때문에 늦어도 12월 중순까지는 주주 충실의무와 관련한 제도 개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상법 개정의 공은 국민의힘으로 넘어온 만큼 한 대표가 어떤 태도를 보일 지를 놓고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다.
한 대표는 과거 법무부 장관 시절 주주들의 공정한 대우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국민의힘 안팎의 말을 들어보면 재계에 부담을 주는 정책에 대해선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 내에도 한국증시 하락을 들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고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 주주이익을 비롯한 모호한 법률용어를 더 정치하게 다듬자는 차원에 가깝다"며 "한 대표 본인이 개정을 주도하기 보다는 당원이나 의원들 생각에 맡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