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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11월] 금융권 ‘책무구조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어선 안 된다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24-11-0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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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미 다 하고 있던 일.”

시중은행에 다니는 몇몇 지인들에게 4일 시범운영에 들어간 책무구조도에 대해 묻자 하나 같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데스크리포트 11월] 금융권 ‘책무구조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어선 안 된다
▲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두 달 간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는 18개 금융사가 참여했다.
요약하자면 임원의 책임부담이 커지는 것과 별개로 밑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내부통제와 관련해 이미 하던 일을 다시 조합하고 규정하면서 반복적 업무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다.
 
책무구조도는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7월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핵심으로 꼽힌다.
 
금융사가 각 임원별 책임영역을 사전에 배분한 문서로 끊임없이 터지는 금융사고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도입됐다.
 
외부에서 봤을 때 책무구조도는 단순히 임원의 책무를 나눈 하나의 문서가 생긴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 참여한 금융사들은 각 업무별로 임원의 책무를 세밀히 나누고 이를 실제업무에 적용하기 위한 전산을 개발하고 화면을 만들었다.
 
신설된 화면에 내부통제 업무를 새롭게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책무구조도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향후 책무구조도 관련 임원용 보고자료를 만드는 일 역시 일반 행원과 직원들의 몫이다.
 
기존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라진 상태에서 책무구조도가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유사한 업무가 새로 생긴 만큼 개별 행원과 직원은 귀찮은 일이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미 내부통제 규제를 잘 지키고 있는 대다수 선량한 행원과 직원들은 점검 강도가 강해지면서 업무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추가 업무만 늘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책무구조도는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금융권의 내부통제 사고는 규모가 커지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금융권을 향한 국민적 신뢰는 크게 낮아졌다.
 
이에 올해는 금융지주 회장이 사상 처음으로 금융사고를 이유로 국회 정무위 국감 증인으로 출석했다. 같은 이유로 2022년 5대 시중은행장이 국회 정무위 국감 증인으로 불려나가 고개를 숙이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지 2년 만이다.
 
책무구조도를 통해 내부통제에 대한 임직원의 경각심을 높이고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금융권 전반의 신뢰는 올라갈 수 있다. 신뢰 하락에 따른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으면서 업무 전반의 효율성 역시 높아질 수 있다.
 
책무구조도에 대한 회의적 평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하고 있던 내부통제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다지만 모든 임원에게 내부통제 의무가 새롭게 부여되고 관련 과정을 직접 관리하도록 하면서 전반적 긴장감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전에 두루뭉술하게 넘겼던 업무의 책임소재를 이번 기회에 명확히 규정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책무구조도가 제대로 작동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도입만 되고 유명무실해진다면 책무구조도는 (기존의 수많은 제도처럼) 비효율의 상징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책무구조도가 또 하나의 반복적 업무로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엄정한 제재를 통해 책무구조도에 힘을 싣고 내부통제 관련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데스크리포트 11월] 금융권 ‘책무구조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어선 안 된다
▲ 책무구조도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 관련 제재시 '위법행위 고려요소'의 구성. <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은 향후 금융사에서 내부통제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바탕으로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에 따라 책무구조도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는 금융지주 9곳, 은행 9곳 등 다수의 금융사가 참여했다. 시범운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도입을 서둘렀다는 후문도 들린다.

결국 규제산업인 금융산업에서 금융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금융당국이다. 금융당국의 태도와 의지에 책무구조도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와 관련해 내부통제 등 관리의무를 위반했을 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35조에 따라 임직원 제재조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35조는 금융사 임원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해임요구,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내년부터는 본격 시행된다.

책무구조도가 단순한 반복 업무로 바뀌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을지, 내부통제 강화를 이끈 첨병을 남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부장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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