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현 기자 hsmyk@businesspost.co.kr2024-11-05 15: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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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국내 기업들의 경영 위기가 고조되면서 재계에 인사 쇄신 바람이 불어닥칠 조짐이다. 이미 연중 비정기 인사로 일찌감치 조직 혁신에 나선 곳도 있고, 예년보다 연말 인사 시기를 앞당겨 시행한 곳도 있다. 아직 인사가 이뤄지지 않은 기업들 사이에는 인사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기에 기업들이 인사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말 임원인사에서 슬림화를 결단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SK그룹이 11월 중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말 정기 인사을 통해 전체 임원 수를 대폭 감축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전체 임원 가운데 20~30%까지 줄일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재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침에 따라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춘 사업 전환(리밸런싱)과 함께 대대적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그룹의 올해 정기 인사 키워드는 이공계, 성과 중심, 젊은피 수혈 등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최 회장은 그룹 전체 계열사 조직을 ‘슬림’하게 만들겠다는 방침 아래 인력 규모 감축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5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SK그룹 내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를 중심으로 연말 정기 인사에서 대규모 개편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지난 6월 “자회사 등을 관리 가능한 범위로 줄여야 한다”고 밝혔는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회사 구조조정과 투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들의 AI 전환 의지를 강하게 나타낸 만큼, 이를 위한 인사이동 역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2026년까지 80조 원을 투자해 계열사의 AI 전환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정기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해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AI 관련 자회사에 추가 인력을 배치하고 투자를 늘리는 대신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조직과 투자 규모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2024 SK그룹 CEO 세미나’ 폐막식에서 “글로벌 시장의 빠른 변화에 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AI·반도체·에너지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지난 7월1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 E&S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계열사는 이미 인사이동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임원 인사를 단행한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서비스 부서 ‘하이테크 사업부’를 신설하면서 임원 18명이 물러났다. AI와 밀접한 반도체 사업을 키우기 위한 인사조정이 단행된 것이다.
조직 규모를 슬림화하기 위해 과감한 인력조정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SK에코플랜트 인사에서 승진한 임원은 단 1명뿐이다. 7월에는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 사장이 사임하기도 했다.
SKE&S와 합병으로 105조 원 규모의 아시아 최대 에너지기업이 된 SK이노베이션은 ‘기술 인재’ 중심 인사를 최근 단행했다. 회사는 지난 10월 부진했던 SK지오센트릭, SK에너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등 3개 계열사의 사장을 전면 교체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김종화 SK에너지 울산 CLX 총괄이 SK에너지 사장으로, 연구원 출신인 최안섭 SK지오세트릭 사업본부장과 이상민 SK엔무부 성장본부장이 각각 SK지오센트릭과 SKIET 사장으로 임명됐다.
SK에너지의 경우 사장으로 선임된지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사장 전격 교체가 이뤄져 SK그룹의 고강도 인사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올해 3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지만, 증권가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감소)을 겪고 있는 SK온의 지속적 흑자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SK온은 2022년 설립 이래 3조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온은 앞서 직원 수부터 감축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SK온 직원 대상으로 권고휴직, 희망퇴직 등 인력 축소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4년 11월2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24 SK그룹 CEO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 SK >
코로나 이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도 이번 정기 인사에서 임원들이 대거 바뀔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회사는 올해 상반기 48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회사는 미국과 유럽의 유망 바이오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등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실적으로 반영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그룹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자회사를 줄이겠다고 천명한 만큼, 이번 구조개편을 피해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SK그룹 CEO 세미나에서 “운영개선 고도화를 위해서는 AI를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며 “일상적으로 AI를 사용하는 젊은 구성원과 리더들이 AI를 접목한 운영개선 방안 등을 제안해 회사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임명된 최안섭 SK지오센트릭 사장 내정자와 이상민 SKIET 사장 내정자는 모두 40대 후반이다. 지난해 말 선임된 김양택 SK머티리얼즈 사장과 류광민 SK넥실리스 사장도 1975년 생으로 40대다.
50대 중후반이 주를 이뤘던 SK그룹의 임원진 구성에 더 큰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SK그룹 정기 인사에서 40대에서 50대 초반까지 젊은 임원들이 사장단으로 임명될 가능성이높다”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