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11-03 06:00:00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대표되는 의료공백 사태를 부른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꼬이게 될 가능성이 나온다.
정부는 의료계의 반발에도 ‘마이웨이’ 의료개혁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다 의료계 주요 협상창구이자 대표적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내부에서도 내분이 점차 격화되고 있어서다.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는 가운데 여야의정협의체가 의료공백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지 주목된다.
정부가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는 가운데 거대 양당 주도로 추진되는 여야의정 협의체가 의정갈등 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될 지 주목된다.
3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로 의정갈등이 심각해진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정부가 기존 구상대로 의료개혁을 밀어붙이는 점을 놓고 거센 비판이 나온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몇 개월째 이어지는 의료 대란 수습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당겨쓰게 되면서 매년 1조원의 단기 적자가 예상된다"며 "윤 대통령이 (의료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마구 사고를 쳐놓으면 젊은 세대들이 나중에 건강보험을 탈퇴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엉망진창이다"고 비판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2025년도 의대 정원은 논의 불가'라는 아집을 그만 버리라"며 "이제는 근본적 입장 전환이 필요하다"고 날을 세웠다.
이런 야당의 거세 비판 속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증원에 이어 애초 계획했던 의료개혁 정책을 밀고 나갈 태세다.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의료개혁 2차 과제로 예정된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이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재정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며 실손보험 개혁안을 올해 안에 마련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정부의 실손보험 개혁 방침은 최근 건강보험 급여진료에 실손보험금을 받는 비급여 진료를 끼워 파는 ‘혼합 진료’가 늘면서 건강보험 재정 부담된다는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 4대 과제는 △의사증원 △지역의료강화 △의료사고방지 △공정보상 등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을 정부가 투입할 30조원과 건강보험 재정효율화를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정부가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을 손보려는 것은 역시 이같은 건강보험 재정효율화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이같은 정부 정책 방향을 놓고 '탁상행정'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의료계 주장에 따르면 의사 진료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의료수가' 정상화 없이 실손보험을 기반으로 하는 혼합진료를 막을 경우 일부 1차병원 재정에 타격이 예상된다. 의료수가란 건강보험공단이 의료행위 비용 일부를 의료서비스 제공자에 환자 대신 부담하는 것으로 진료비의 70~90%를 차지한다.
의료계는 정부가 실손보험 제도를 손보기 앞서 수요가 나타나는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소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김택우 전 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저수가 문제로 일부 의료기관 경영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이전 정부가 혼합진료를 허용해 준 것"이라며 "이제 와서 의사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의대증원 문제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극한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정부가 의료계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의정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미 의료계는 '2025년 의대증원' 정책의 백지화를 내걸고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의사협회에선 “여야의정협의체 참여에 앞서 의료 현장 정상화를 위해 2025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의대증원 백지화 없이는 전공의와 의대생 상당수가 현장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2025학년도 입시가 시작된 만큼 2025년 의대증원 백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입시 원서 접수는 2024년 9월 초에 모두 마감됐다.
장상윤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최근 SBS 라디오 김태현의정치쇼에 나와 "2025학년도 정원 문제는 사실상 활시위를 떠났다"며 "바꾼다면 굉장한 혼란을 초래하고 법적으로는 소송 가능성도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더구나 의료계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점도 향후 의정갈등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가운데)이 22일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간담회를 마친 뒤 박주민 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0일 임원총회를 열고 임현택 회장의 탄핵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임 회장은 그간 막말, 전공의단체와 갈등으로 리더십 위기를 겪어 왔다.
이에 더해 임 회장이 서울시의사회의 한 간부를 고소한 뒤 해당 의사에게 고소취하를 명목으로 현금 1억을 요구했다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이 최근 공개되자 탄핵 위기에 놓였다.
의사협회는 국내등록의사 약 80%를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의료인단체로 가장 대표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사협회가 내부 갈등을 수습하거나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의사협회는 회장 탄핵시 비대위를 구성하고 60일 안에 새 의협회장 선출하도록 하는 규정을 정해놓고 있다.
의사협회의 지도부 부재에 따른 내부 갈등은 여야의정 협의체를 포함한 각종 대화 관련 논의 일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주요 의료인단체 가운데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선언했지만 의사협회와 함께 의정갈등에서 핵심인 대한전공의협회와 각 의대 의대생 단체들은 여전히 불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역시 참여 보류 입장을 내놓으면서 여야의정협의체 구성이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놓고 현재까지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민주당은 의정 사태 핵심주체인 전공의단체 참여와 2025년 의대증원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 변화 없이는 여야의정협의체를 가동하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도부가 예고한 2차 여야대표회담에서 의정대화 관련 논의가 다뤄질 것으로 알려진 만큼 여기서 의정갈등 해소를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6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만나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문제를 논의했다. 현재 민주당이 의정갈등의 핵심인 전공의단체와 대화의 끈을 이어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대표는 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응급실 뺑뺑이에 이어 중환자실 뺑뺑이가 시작되고 곧 의료시스템의 전면적 붕괴가 예상된다”며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어떤 의제는 말할 수 없다. 내년 정원은 이미 끝났다. 그 얘기를 하려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