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관련 대응 G20 정상회의 논의 사항을 홍보하는 영상. < G20 유튜브 > |
[비즈니스포스트]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두고 세계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세금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억만장자에 세금을 조금만 더 매겨도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천문학적 재원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유세'가 구체화되면 특히 향후 논의될 기후재무 재정 확충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가디언을 비롯한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다음달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글로벌 부유세' 도입이 문제가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필리핀 언론 비즈니스월드에 따르면 제프리 삭스 '유엔 지속가능 개발 솔루션 네트워크(UN SDSN)' 총재는 지난 17일(현지시각) 마닐라 대학 포럼 현장에서 "우리는 부유세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부유세는 세계 사회의 공공의 이익 실천을 위한 사업에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재원이 돼야 하며 이것은 기후변화에 맞선 싸움에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유세는 앞서 지난 4월 G20 주최국 브라질이 독일,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제안한 글로벌 세제 개편안의 일부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정부는 전 세계 억만장자 3천 명에게 보유 재산의 2%를 세금으로 매기면 연간 약 2500억 유로(약 368조 원)를 추가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기후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이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부과 대상에 억만장자뿐 아니라 글로벌 대기업들까지 포함한다면 직접세 규모가 약 4830억 달러(약 642조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G20 재무장관들은 지난 7월 부유세 시행과 세제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장관급 회의를 열었다. 폴리티코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 부유세 시행에 가장 크게 반대한 것은 미국과 독일이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것(부유세)과 관련해 글로벌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처음 부유세 제안이 나왔을 때 브라질과 입장을 함께 했던 독일도 미국과 같이 부유세 시행에 반대하는 태도도 돌아섰다.
독일 재무부는 공식성명을 통해 "최저한도를 정해놓는 부유세 시행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두 나라의 반대에도 G20 재무 장관들은 최종적으로 부유세 시행을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폴리티코가 입수한 G20 합의문 초안을 보면 (G20 국가들은) 엄청난 재산을 보유한 개개인들의 과세안까지 포함된 공정하고 진보적인 세금안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각국의 세금 집행에 관한 주권을 존중하면서도 이들 개개인을 향한 과세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명시됐다.
전문가들도 각국 장부를 향해 부유세 시행을 향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영국 비영리단체 '택스저스티스(Tax Justice UK)'의 로버트 팔머 대표 디렉터는 16일(현지시각) 영국 정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영국만 봐도 약 10%에 불과한 사람들이 부의 57%를 독점하고 있다"며 "슈퍼 리치들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영국 정부가 더 낫고 강한 사회 구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유세 시행을 향한 대중의 지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비영리연구단체 '어스포올(Earth4All)'은 자체 조사 결과 G20 국민 가운데 약 70%가 슈퍼 리치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과세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이는 G20 국가 18개국에 거주하는 18세부터 75세 사이의 나이를 가진 시민 2만2천여 명을 대상으로 올해 3월부터 4월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조사 대상 세계 시민 가운데 개인을 대상으로 한 부유세에 찬성한 것은 70%였고, 대기업이나 재단에도 부유세를 확대해야 한다고 본 비중도 68%였다. 부유세 시행 자체에 반대한 시민은 11%에 불과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는 기후대응과 빠른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 시민들도 71%에 달했다.
오웬 가프니 어스포올 공동대표는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가 이보다도 명확할 수는 없다"며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세계 경제 대국들의 사람들 대다수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향후 10년 안으로 중대하고 즉각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프니 공동대표는 "또 많은 사람들은 현재 경제 체제가 본인들의 삶과 맞지 않다고 느끼고 있으며 경제 개혁을 원하고 있다"며 "어쩌면 이것이 최근 세계 정치권에서 두드러진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부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고 말했다.
부유세가 구체화하면 다음 단계의 기후재무 확보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다음 달 말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부대행사가 개최될 아제르바이잔 바쿠 올림픽 경기장. <연합뉴스> |
G20 뒤 바로 개최되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는 다음 단계의 기후재무 조달 방안과 규모 등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된다.
기후재무란 기후변화의 원인과 그 영향으로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사용하는 재원을 말한다. 주로 자체 기후대응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이나 사회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된다.
가장 대표적 글로벌 기후재무는 '손실과 피해 기금'으로 약 1천억 달러(약 136조 원)에 달한다. 내년부터 집행에 들어가며 세계은행이 주관한다.
이에 손실과 피해 기금에 뒤이을 기후재무를 마련돼야 하는 COP29 의장실에선 차세대 기후재무는 규모가 더욱 커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얄친 라피예프 COP29 의장실 대표 협상관은 “최근 COP29 사전 회의에서 이해 관계자들은 수조 달러 규모 기후재무가 필요하다는 것에 처음으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COP29 본회의에서는 각국의 입장 조율에 이어 차세대 기후재원 마련 방안과 집행 방식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크타르 바바예프 COP29 의장은 공식성명을 통해 “우리는 기후재무 마련과 관련해 여러 선택지들을 좁히는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며 “최종안이 가시권에 들어왔으나 여전히 당사국들과 좁혀야 할 격차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